230522.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2)
그동안 부활시기 내내, 우리는 예수님의 고별담화인 요한복음 13장 후반부부터 14장, 15장, 16장의 다락방에서의 유언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마지막 장면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약해질 때가 올 것을 미리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혼자 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요한 16,32)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할 것입니다. 의혹에 휩싸이고 혼동에 빠질 것입니다. 각자 제 갈 길로 가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은 “약하고 더듬거리고 무지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강함은 우리의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주님의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지탱한다.”(루돌프 스테르텐브링크. “하늘은 땅에서 열린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33)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남겨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연약함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평화’란, 그 어떤 곤란과 슬픔 속에서도 하느님께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평화’란 단순히 갈등이나 시련이나 고통이 사라진 상태, 분열이나 전쟁이 없는 상태, 혹은 그 어떤 낙담이 전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의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분명,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요한 16,3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당신이 주시는 평화를 말씀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만드는 평화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좋은 환경이나 자기만족에서 얻어지는 평화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 안에서’ 얻게 되는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무데서나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는 ‘마음의 평화’가 아닙니다. 오로지, ‘그분 안에서’ 평화를 찾는 일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고자 ‘당신 안에’ 마련한 평화를 찾는 일입니다. 사실, 당신이 주시는 평화는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주님의 믿음이 주는 평화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2)
이제 그분이 주신 평화로, 우리도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주님!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옳고도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죄마저 뒤집어쓰고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지는 무능이 이기는 전능임을 알게 하소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져줄 줄을 알게 하소서.
사랑이 이기는 길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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