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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불어 떠남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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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23 조회수408 추천수8 반대(0) 신고

더불어 떠남의 여정

-‘오늘부터’,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진리는 반복해도 늘 새롭습니다. 저에게는 ‘여정’이란 말마디가 그러합니다. 삶은 여정입니다. 누구도 세월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쏜살같이, 강물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한곳에서 오래 정주하다 보니, 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가 뚜렷한 자연환경의 수도원이고 보니 세월의 흐름을 실감합니다. 특히 휴가를 떠나 귀원하는 형제들을 보면 시간도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아마 인생 휴가 끝나고 아버지의 집으로 귀원할 때도 그러할 것입니다. 수도원 초창기 풋풋한 젊음의 40대 전후의 도반들도 이젠 70을 훌쩍 넘어 버렸습니다. 수도원 사진첩을 보면 더욱 실감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 30년 지나면서 사라질 분도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병고를 안고 더불어 여정중인 형제들에 대해 저절로 연민의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가 참 아름답습니다. 요한복음 제17장은 전통적으로 ‘대사제의 기도’라 칭하지만 예수님께서 수난에 앞서 세상을 떠나기전 ‘고별기도’라 함이 적절합니다. 17장은 자신을 위한 기도, 제자들을 위한 기도, 믿는 이들을 위한 기도로 이루어졌습니다. 또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에페소를 떠나면서 에페소 교회 원로들에게 남긴 고별인사입니다. 두분의 떠남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떠남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착안한 강론 제목이 “떠남의 여정-오늘부터, 지금부터가 중요하다-”입니다. “떠남의 여정” 역시 산티아고 순례 여정후 많이 반복하여 사용했던 주제입니다. 어쨌든 가장 많이 강론 주제로 등장하는 여정이란 말마디입니다. 성서의 위인들이나 교회 성인들의 삶의 여정을 보면 대부분 참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벗이라 불렸던 아브라함, 모세는 물론이고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예수님과 바오로, 그리고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 역시 마지막 임종시 아름다운 떠남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떠남의 여정과 관련하여 제가 피정자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강론중에도 자주 반복하여 예를 들지만 저에게는 늘 절실하게 와닿는 내용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할 때, 즉 오전 6시로 시작하여 해가 지는 죽음을 상징하는 오후6시의 하루로 압축할 때, 과연 어느 시점時點에 위치해 있겠느냐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일년사계, ‘봄-여름-가을-겨울’로 압축할 때 어느 시점時點에 와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으면 다들 진지한 얼굴이 됩니다. 저로 말하면 하루로 하면 오후 4:30분, 일년사계로 하면 초겨울쯤 위치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런 확인이 삶의 환상이나 허영, 거품을 거둬내고 겸손히, 성실히 하루하루 하느님 주신 선물 같은 날,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합니다. 참 흥미로운 것이 피정 오는 형제자매들 대부분이 가을 나이에 걸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신록의 빛나는 5월의 봄철 나이에 속한 분들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그래도 믿는 이들의 영혼은 신록의 젊음이라며 5월 단체 피정자들은 격려하는 차원에서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도록 합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들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피정의날’ 우리들 세상”

 

싱글벙글 웃으며 하느님의 어린이들이 되어 신나게 부를때는 모두가 신록으로 빛나는 영혼들같이 참 아름답습니다. 역시 젊음은 나이에 있는게 아니라 주님 사랑의 열정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잘 살아야 잘 떠납니다. 잘 떠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떠나온 삶은 지난 것이고 오늘부터,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늘 새로운 떠남이 중요합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 때도 가장 기쁨으로 설렜던 시간은 새벽길 떠날 때 였습니다. ‘떠남의 훈련’같은 산티아고 순례 여정이었습니다. 과연 하루하루 기쁨으로 설레는 떠남의 여정인지 반성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과 바오로의 떠남이 흡사 죽음을 앞둔 떠남처럼 느껴지고 사실이 그러합니다. 정말 마지막 죽음보다 더 중요한 떠남은 없습니다. 떠남 역시 훈련입니다. 하루하루 잘 떠나야 마지막 떠남인 죽음도 참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신을 위한 고별기도는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한마디도 생략하기가 아깝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맡기신 일을 완수하여, 저는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이제 제가 아버지 앞에서 누리던 그 영광으로, 저를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참으로 잘 살다가 잘 떠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날마다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떠남의 모범이 사도행전의 바오로입니다. 떠남에 앞서 사도의 아름다운 삶에 감동하게 됩니다. 구구절절 감동이지만 일부만 인용합니다.

 

“나는 유다인들의 음모로 여러 시련을 겪고 눈물을 흘리며 아주 겸손히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유익한 것이라면 무엇 하나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정말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죽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한 진인사대천명의 삶이요, 주님 사랑에 목숨을 내놓은 바오로의 치열한, 가열찬 감동의 삶이었기에 아름다운 떠남의 죽음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하루 “떠남의 여정”을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오늘부터,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떠남의 삶이 중요합니다. 이런 떠남의 여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평생 도반이신 주님과의 사랑이요 우정입니다. 주님을 절친으로 삼아 날로 사랑과 신뢰의 우정을 깊이할 때 "주님 만날 기쁨"에 설레는 떠남의 여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더불어 떠남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바로 어제 바친, 매주 화요일 3시경 찬미가 2절이 좋아 나눕니다.

 

“진리여 사랑이여 목적이시여

우리의 다함없는 행복이시여

주님을 사랑하고 믿고 바라며

주님께 도달하게 하여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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