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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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5-26 | 조회수40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 요한 21,15-19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종종 상대방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너 나 사랑하니?’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가 그의 말이나 행동 안에서 충분히 드러난다면 굳이 이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그가‘사랑해’라고 직접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의 사랑을 마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너 나 사랑하니?’라는 물음이 필요한 순간은 사랑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할 때입니다. 하루 종일 카톡으로 대화하고서도 목소리를 듣고 싶다며 전화하던 그가 몇 시간 동안이나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며 나만 위해주던 그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고 한 눈을 팔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나를 향한 상대방의 사랑이 ‘변했다’는 느낌이 들 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그에게 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너 나 사랑하니?’ 그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자기 모습을 돌아보고 나와의 관계에 소홀했던 부분을 반성하며 다시금 사랑을 회복할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그 사람의 달라진 모습에 관계가 깨질까봐 두려워서 마음이 잔뜩 움츠러든 내가, 그의 사랑을 확인함으로써 다시금 용기를 내어 온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입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부족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다시금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싶으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미리 알려주셨을 때, 베드로는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26,33)라고 장담했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더 뛰어남을 드러내고 싶었던 겁니다. 하지만 닭이 울기 전에 스승님과의 관계를 세 번이나 부정했던 가슴 아픈 체험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고 그래서 이제는 자기 사랑을 다른 이와 비교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고백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시, 또 다시 ‘나를 사랑하느냐?’고 반복해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런 상황이 마음 아파서 슬퍼하며 대답합니다. 여기서 ‘슬퍼하며’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뤼페오’는 마태오 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 이야기에도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다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라라’라는 예수님의 권고에 ‘슬퍼하며’ 그분 곁을 떠나갔지요. 재물에 대한 욕심과 집착 때문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따르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포기해버린 자신의 부족함과 약함을 슬퍼했던 겁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도 그런 슬픔을 느끼기를 바라셨습니다. 당신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희생적 사랑’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당신을 좋아하고 또 따르고 싶지만 그정도까진 아니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예수님의 수제자임에도 아직 그분께서 바라시는 사랑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진심으로 마음아파 하며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 부족함을 채우도록 이끄시기 위해 ‘나를 사랑하느냐’고 반복해서 물으신 것이지요.
하지만 마지막 질문에서는 베드로가 사용한 그 단어로 물으십니다. ‘너는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끼느냐?’ 지금 당장은 예수님을 닮은 ‘완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더라도, 매일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도록,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랑을 하도록 노력하는 자세를 어여삐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지금은 비록 부족하더라도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노력하면, 부족한건 주님께서 채워주십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 주님을 향한 사랑을 키워가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주님 당신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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