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7주간 토요일]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자기 감정을 책임지는 방법 | |||
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5-27 | 조회수31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요한 21,20-25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어떤 사람이 매일 열심히 기도한 끝에 그렇게 뵙기를 고대하던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끈기와 노력을 칭찬하시며 그에게 선물로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그 소원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무슨 소원을 빌든 그의 이웃에게는 그가 받은 것의 두 배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기가 선물을 받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사사건건 부딪히고 싸우는 저 얄미운 녀석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자기보다 두 배나 큰 선물을 받게되는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한참 동안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마침내 결심했다는듯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럼 제 한쪽 눈을 뽑아 주십시오.”
이 사람의 선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라면 그런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을거라고 자신있게 말씀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합니다. 실제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내 연봉이 많이 오르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연봉은 내 두 배로 오르는 것’과, ‘내 연봉이 안오르는 대신 다른 사람들 연봉의 두 배가 되는 것’ 중에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많은 이들이 후자를 선택했다는 결과도 있지요. 자기만의 고유하고 절대적인 행복을 찾으려 하기보다, 다른 이들과의 비교 우위 안에서 상대적 행복을 확인하려고 하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덜 불행’한 것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우리의 어리석고 슬픈 자화상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베드로도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과정에서 박해를 겪고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베드로는 자기 혼자만 그런 고통과 시련을 겪어야 하는게 억울했는지, 요한의 앞날은 어떻게 되겠느냐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는 평소에 예수님께서 각별히 아끼고 사랑하신 제자이니,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기와는 달리 쉽고 편하며 영광과 행복이 보장되는 ‘꽃길’을 걷게 되는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예수님께 직접 확인하려 든 겁니다. 혹시나 자기가 생각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왜 나만 그렇게 힘들고 괴로운 길을 걸어야 하느냐’고 예수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우리들 각자는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이 다르고 부여받은 소명도 서로 다르니, 굳이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느라 쓸 데 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에게는 요한의 길이 있고, 베드로에게는 베드로의 길이 있습니다. 그 중요한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들을 열심히 찾아야, 그분께서 오직 나만을 위해 준비해주신 그 특별한 길을 찬찬히 살펴야 삶의 참된 행복들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우리의 구원과 ‘상관 있는’, 그래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신경써야 할 관계는 하느님 아버지와 맺는 사랑의 관계 뿐입니다. 그 관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들을 놓치지 않고 잘 받을 수 있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