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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자기 감정을 책임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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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27 조회수51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3년 가해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자기 감정을 책임지는 방법>

 

 

 

 

복음: 요한 21,20-25

 

 

 



LORENZETTI, Pietro 작, (1325)  

    

 

 

    사랑은 무엇일까요? 먼저 이웃의 감정을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모기는 자신이 피를 빨아 먹는 대상의 감정을 공유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굶어 죽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웃의 감정을 공감합니다. 상대의 감정을 읽는 공감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은 사랑이 줄어 모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웃이 죽고 싶다고 해서 자신도 죽고 싶어지면 될까요? 이것이 공감이고 사랑일까요? 이것은 상대의 감정을 느껴서가 아니라 상대를 잃은 나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가 사망하자 같이 따라 죽었습니다. 혼자는 살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랑일까요? 아마 배우자는 자녀를 두고 자신을 따라오는 남편에 대해 화가 날 것입니다. 

 

 

    상대의 감정을 공감하는 사람은 오히려 자기 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상대의 감정을 읽느라 내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묻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이 흔들리는 이유는 나의 행복을 세상 것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니 세상 것과 함께 흔들리는 것입니다. 나의 감정의 배에서 나와야 합니다. 자기 감정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그 신경을 다른 것에 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내가 지금 해야 할 소명에 집중하면 감정을 책임질 수 있게 됩니다. 

 

 

    얼마 전 레알 마드리드의 유명 축구선수 비니시우스가 또 심한 인종차별을 당했습니다. 경기 도중 화가 나서 관중에게 삿대질을 하였고 결국 퇴장을 당해 경기에 지장을 주었습니다. 만약 그가 경기에 조금 더 높은 비중을 두었다면 감정이 그렇게 자신을 잡아먹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경기를 열심히 뛰었을 때 자신에게 오는 영광이 상대편 팬들의 삿대질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위로입니다. 

 

 

    호레이쇼 스패포드(Horatio G. Spafford)는 시카고의 탁월한 변호사였고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1871년에 스패포드의 삶은 비극적인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그는 성홍열로 네 살 된 아들을 잃었고 시카고 대화재로 대부분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보다 더 불우한 상황에 놓인 노숙자, 빈곤층, 슬픔에 잠긴 화재 희생자를 돕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바쳤습니다.

 

 

    2년 후인 1873년에 스패포드는 휴가를 가족과 함께 영국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전도 여행을 하고 있던 그의 친구 무디를 만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막바지 사업 개발로 인해 스패포드는 시카고에 머물러야 했고 아내와 네 딸을 먼저 보내고 며칠 후에 따라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다 비극적으로 그의 가족이 타고 가던 배는 다른 배와 충돌하여 침몰했습니다. 아내 안나는 잔해 조각에 떠 있는 채로 발견되었으며 몇 안 되는 생존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들의 네 딸 애니, 매기, 베시, 타네타는 모두 사망했습니다. 안나는 영국에 도착했을 때 남편에게 가슴 아픈 전보를 보냈습니다. 

    “혼자 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식을 접한 스패포드는 즉시 시카고를 떠나 슬픔에 잠긴 아내와 합류했습니다. 그의 배가 그의 딸들이 익사한 지점 근처를 지나갈 때 그는 하느님께 절규했습니다. 그때 이상한 마음의 평안함을 느꼈고 즉시 느끼는 대로 시를 썼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찬송가 “It Is Well with My Soul”(내 영혼 평안해)입니다. 

 

평화 같은 강이, 내 길을 따라 흐르고,

슬픔 같은 파도가, 내게 밀려올 때,

어떤 상황이든, 주께서 내게 가르쳐 주신대로 말하리라,

내 영혼이 안녕하다, 내 영혼이 안녕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평안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었고 하느님은 그에게 칭찬과 영광을 주신 것입니다. 그 성령이 우리를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게 합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감정입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입니다. 성령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래서 지상의 어떤 일도 그 감정을 누를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성령은 당신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만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는 암에 걸렸을 때도 톤즈에서 우물을 파다 온 생각밖에 없습니다. 다시 돌아가 우물을 파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소명 의식이 감정의 평화를 누리게 합니다. 주님 소명을 따를 때 우리는 우리 감정을 책임질 수 있게 됩니다. 우리 힘이 아니라 내가 따라주는 분이 내리시는 보상에 의해서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영화에서 전쟁 영웅들은 하나하나 죽어갑니다. 그러나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습니다. 조국을 위해 소명을 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나쁜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것에 신경을 기울일 줄 알면 그만입니다. 타인 감정에 진심으로 민감한 사람은 자기 감정에 무딥니다. 아니 평안함을 누립니다. 내가 타인의 감정에 충실하게 한 그에게서 오는 영광 때문입니다. 오직 하느님, 그리고 그분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에 집중하면 감정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로 세상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주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H08RpmL0sQk

유튜브 묵상 동영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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