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28.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요한 20,22-23)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게서는 오늘도 갖가지 모습으로 저희에게 오시고 함께 현존하시며 동행하시지만, 특별히 오늘 <말씀 전례>에서는 성령께서 오시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놀라운 모습’, 곧 하늘에서 세찬 바람의 소리와 불과 혀의 모양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고요한 모습’, 곧 닫혀 진 문을 뚫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러운 숨결의 모양으로 들어오십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하늘 문을 열거나, 땅의 문을 열거나 모두 ‘닫힌 문’을 열면서 벌어집니다. 곧 성령의 활동은 ‘문을 여는 일’을 통해 드러납니다. 곧 성령께서는 하늘을 가르고, 닫혀 진 문을 부수고, 가려진 장막의 휘장을 찢고, 죽음에 갇힌 무덤을 풀며, 우리의 굳은 마음의 문을 여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이 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묘한 것은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열리고, 닫힌 문은 마음에서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열리는 자리는 바로 우리네 삶의 자리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고, 그러기에 다른 먼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께서는 바로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이 베풀어졌고, 우리는 이미 그분 신비체의 몸입니다.
<제2독서>에서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신비체’는 지체로 이루어진 ‘한 몸’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몸은 바로 성령에 의해 지탱되고 존속됩니다. 그 지체를 서로 결합시키고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평화”를 주시는 장면과 성령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는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협력자’이시오 우리의 ‘협력자’이신 ‘성령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새 백성이 탄생되고, 새 시대가 열리고, 그리스도 몸의 신비체인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닫혀 진 문’을 열고 들어 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닫혀 진 문’ 뒤에 숨어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문을 잠가 놓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닫혀 진 문’을 뚫고 들어오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니다. 팔레스티나에서 보통으로 표현하던 이 인사는 이제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시는 인사가 됩니다. 이제 이 평화는 주님의 축복이요, 선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재가 방황이요 두려움이라면, 예수님의 현존이 곧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현존으로 이제 공포는 기쁨으로 바뀌고, 혼란스러운 무질서는 질서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공포와 두려움에 ‘닫혀 진 마음의 문’을 열고서, ‘성령’의 숨결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평화의 전령’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요한 20,21-22)
이제 제자들은 평화의 도구,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이 평화를 서로 나누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 이 평화를 건설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그런데 이 ‘평화’는 우리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평화는 우리가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이루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협조자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실 때,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말의 원어의 번역은 ‘숨을 건네주었다’는 뜻입니다. 곧 당신의 생명을 건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모두 용서하시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건네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성령을 받아라.”는 말씀은 너희는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주며, 그러니 ‘너희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용서’를 통해, 평화를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용서할 때 평화는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먼저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새롭게 하십니다.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가 용서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평화를 주시고,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감격스런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승복하고, 하느님의 현존에 푹 젖는 성령강림절이 되길 바랍니다. 바로 오늘이 용서와 평화의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성령이시여!
제 안에 흐르소서!
흐르는 골골에 찌든 떼를 벗기시고, 반역과 죄를 몰아내소서!
아픔과 상처 어루만지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소서!
멍들고 굳어진 마음 문지르시고, 접히고 구겨진 마음 펼치소서!
막히고 닫힌 마음 열치시어, 당신 숨결 흐르게 하소서!
새로워지고, 새롭게 살게 하소서!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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