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예수 수난 제6시간 (오후 10시 - 11시) - 겟세마니의 고뇌 둘째 시간 / 교회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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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병찬 | 작성일2023-05-28 | 조회수23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교회인가)에 대한 기도는 24시간 매시간마다 기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기도의 효과와 예수님의 약속은 너무나 풍성하며, 이 기도문 아래에 있습니다. 제6시간 (오후 10시 - 11시) 겟세마니의 고뇌 둘째 시간 준비기도 오, 저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 안에 엎드려 사랑이 지극하신 성심께 간청하오니, 저로 하여금 당신께서 24시간 동안 겪으신 고난의 묵상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소서. 그때 당신께서는 저희에 대한 사랑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까지 당신의 흠숭하올 몸과 지극히 거룩하신 영혼으로 그토록 많은 고난을 받기를 원하셨나이다. 이제 제가 ‘제6시간’을 묵상하는 동안 도움과 은총과 사랑과 깊이 동정하는 마음과 당신 수난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소서. 제가 묵상하지 못하는 시간들에 대해서는 그 시간들을 묵상하려는 의지를 봉헌하오며, 일과에 전념하거나 잠에 빠져 드는 때에도 이 지향으로 그들을 묵상하겠나이다. 오, 자비로우신 주님, 저의 이 사랑 깊은 지향을 받아들이시어, 제가 하고자 하는 바대로 거룩하게 실행한 것처럼 저와 모든 이에게 유익이 되게 해 주소서. 오, 제 예수님, 기도를 통하여 당신과 결합하도록 저를 불러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저는 더욱더 당신 마음에 들기 위하여 당신의 생각과 말씀과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제 온 존재로 당신의 뜻과 사랑 안에 녹아들고자 하나이다. 이제 팔을 벌려 당신을 포옹하며 당신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시작하겠나이다. 1 오, 제 다정하신 예수님, 당신께서 이 동산에 들어오신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이 으뜸가는 위치에서 지배하면서 당신으로 하여금 지극히 고통스러운 수난의 전 과정에 걸쳐 사형 집행자들이 겪게 할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겪으시게 하였습니다. 더구나 사랑은, 사형 집행자들로서는 겪으시게 할 수 없는 고통을, 당신의 신적 인성의 가장 깊은 부분으로 겪으며 보완하시게 할 정도였습니다. 2 오, 저의 예수님, 제 눈에는 이제 당신께서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려고 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오, 저의 선이시여, 어디로 가시렵니까? 아, 알았습니다.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보러 가시려는 것입니다. 저도 함께 가면서 당신께서 쓰러지려고 하시면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3 그러나, 오, 저의 예수님, 제자들은 어느새 잠에 곯아떨어져 있으니, 이것이 당신 마음에 또 하나의 고통이 됩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측은해하시며 그들을 불러 잠을 깨우시고, 아버지다운 사랑으로 부드럽게 타이르시며 깨어 기도하라고 권고하십니다. 그런 후 동산으로 돌아오시지만, 당신 성심에는 이미 또 다른 상처가 생겼습니다. 4 오, 제 사랑이시여, 당신의 이 상처 안에서 저는 자신을 봉헌한 영혼들이 당신께 입힐 모든 날카로운 상처들을 봅니다. 그들은 유혹이나 일시적인 기분 때문에, 또는 극기력이 없기 때문에, 깨어 기도하면서 당신께 더욱더 매달리기는커녕 그들 자신의 욕구에 빠져듭니다. 그러니 사랑과 당신과의 일치 안에 진보하는 대신, 꾸벅꾸벅 졸다가 뒤로 나가떨어지고 맙니다. 5 오, 고난 받는 사랑이시여, 당신이 너무도 가엾고 애처롭습니다! 저는 그래서 당신께 가장 충실해야 할 사람들의 모든 배은망덕을 보속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고통 때문에 혼절하실 정도로, 흠숭하올 당신 마음을 가장 슬프게 하는 죄들인 것입니다. 6 하지만, 오, 한없는 사랑이시여, 당신 혈관 속에서 이미 끓고 있는 사랑은 일체를 정복하고 일체를 잊어버리는 사랑이십니다. 제가 보니 당신께서는 이제 땅에 꿇어 엎드려 기도하시고 당신 자신을 바치시며 보속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통해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려고 힘쓰십니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거슬러 저지르는 죄들 때문입니다. 오, 저의 예수님, 저도 당신과 함께 꿇어 엎드려, 당신께서 하고 계시는 일을 같이 하고자 합니다. 7 오, 예수님, 제 마음의 기쁨이시여, 그렇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든 죄들과 저희의 비참과 나약이, 더없이 엄청난 범죄와 은혜를 모르는 흉악한 행위들이 떼 지어 당신께 몰려와서 맹공을 퍼붓고 당신을 짓누르며 상처를 입히고 물어뜯는 광경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 당신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8 당신의 혈관 속에서 끓고 있는 피가 그 모든 죄와 직면하자 혈관을 터뜨리면서 쏟아져 나옵니다. 피가 당신의 온 몸을 적시고 땅 속으로 스며듭니다. 당신은 죄에 대해서 피를, 곧 죽음에 대해서 생명을 주십니다. 아, 사랑이시여, 당신은 얼마나 가엾은 상태가 되셨는지! 바야흐로 돌아가시는 중이십니다. 9 오, 저의 선이시여, 제 감미로운 생명이시여, 제발 돌아가시지 마옵소서!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피로 젖은 이 땅으로부터 부디 얼굴 좀 드시옵소서! 오셔서 제 팔에 안기십시오! 저에게 허락하시어, 당신 대신 죽게 해 주십시오! 10 한데 저의 귀에는 제 온유하신 당신께서 끊어질 듯 쇠잔한 음성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하시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버지, 하실 수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11 다정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을 저는 벌써 두 번째로 듣습니다. 당신께서는 제게 무엇을 알려 주시고자, “아버지, 하실 수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씀하십니까? 오, 예수님, 사람들의 모든 저항이 당신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12 당신께서는 각 사람의 생명이 되었어야 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Fiat Voluntas Tua)가 거의 모든 이의 배척을 받고 있다는 것과 그래서 그들은 생명 대신 죽음을 얻고 있음을 보십니다. 그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또 사람들의 저항에 대해서 아버지께 장엄한 보속을 바치시기 위하여 세 번 거듭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3 “아버지, 하실 수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이 잔은 아버지와 저의 뜻을 물리침으로써 멸망하는 모든 영혼들이니, 제게 너무 쓰디쓴 잔입니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14 하지만 이 말씀을 하심에 따라 그 쓰디씀의 정도가 엄청나게 커져서 당신을 극단의 순간으로 몰고 갑니다. ―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막 숨을 거두실 듯 한 것입니다. 15 오, 저의 선이신 예수님, 당신께서 제 팔에 안겨 계시니 저도 당신과 하나 되기를 원합니다. 곧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거슬러 저질러지는 모든 잘못과 죄들에 대한 보속을 바치면서 당신께 동정심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또한 제가 언제나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뜻을 실행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당신의 뜻이 저의 숨과 마실 공기가 되고, 저의 심장 고동, 저의 마음과 생각, 저의 삶과 죽음이 되게 해 주십시오. 16 그러나 부디 돌아가시지는 마시옵소서! 당신이 안 계시면 저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누가 저를 도와주겠습니까? 저에게도 모든 것이 끝장날 것입니다! 부디 저를 떠나지 마시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 가장 마음에 드시는 대로 저를 다루시되, 당신과 함께 있게만 해 주십시오! 17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게 해 주십시오! 단 한 순간도 당신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온갖 죄들의 무게에 짓눌려 계신 당신이 보이니, 저로 하여금 당신의 쓰디쓴 고통을 덜어 드리고 보상을 바치며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당신께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게 해 주십시오. 18 저의 사랑이시여, 그래서 저는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머리에 입 맞춥니다. 하지만 제게 보이는 것은 역겨움을 느끼시게 하는 악한 생각들입니다. 그 하나하나가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머리를 찌르는 몹쓸 가시입니다. 19 아, 이는 앞으로 유다인들이 당신에게 씌울 가시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입니다! 사람들의 악한 생각이 흠숭하올 당신 머리에 얼마나 많은 가시관을 씌우는지, 그리하여 당신 이마와 머리카락 밑에서부터 얼마나 많은 피가 흘러내리게 하는지 모릅니다! 20 예수님,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저는 그 가시관들과 같은 수의 영광의 관을 씌워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모든 천사들의 총명과 당신 자신의 지혜를 당신께 봉헌합니다. 이것이 제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드리는 연민의 정과 보속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1 오, 예수님, 저는 당신의 가엾은 눈에 입 맞춥니다. 당신 눈 속에 모든 사람의 악한 눈짓이 보입니다. 이것이 피눈물을 자아내어 당신 얼굴 위로 줄줄 흘러내리게 합니다.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과의 사랑의 일치를 통하여 하늘과 땅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기쁨을 전면에 두어, 당신의 시각을 위로해 드리고자 합니다. 22 저의 선이신 예수님, 저는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귀에 입 맞춥니다. 그러나 제게 무슨 소리가 들리겠습니까? 끔찍한 모독, 복수의 외침, 그리고 악의에 찬 헐뜯음의 메아리입니다. 당신의 이 지극히 정결하신 귓속에 울려 퍼지지 않는 소리란 하나도 없습니다. 23 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랑이시여,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국의 모든 노래와 사랑하올 엄마의 아름다운 음성이,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와 사랑 깊은 모든 영혼들의 열정적인 말들이 당신 귓속에 울려 퍼지게 하여 위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24 예수님, 저의 생명이시여, 저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우신 당신 얼굴에 더욱 뜨겁게 입 맞춥니다. 아, 이는 천사들이 ―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큐피드 같은 모습으로 ― 눈을 뗄 엄두도 못 낼 만큼 아름다운 얼굴, 황홀해서 어쩔 줄 모를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침을 뱉어 이 얼굴을 더럽히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발로 짓밟습니다. 25 저의 사랑이시여, 이 얼마나 무엄한 짓입니까! 그들이 달아날 정도로 목청껏 고함을 지르고 싶습니다!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욕들을 보상하려고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께 갑니다. 가서 아버지와 성령의 입맞춤을, 그리고 그분들의 창조적인 손길의 거룩하신 어루만짐을 간청하려는 것입니다. 26 또 저는 천상 엄마께로 갑니다. 엄마께서 입맞춤과 그 모성적인 손길의 어루만짐과 그분의 깊디깊은 흠숭을 저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바쳐,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얼굴을 모독하는 죄들을 배상하겠습니다. 27 제 감미로운 선이시여, 저는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입에 입 맞춥니다. 그런데 끔찍한 모독, 역겨운 폭주와 폭음폭식, 음란한 대화, 아무렇게나 바치는 기도, 유해한 가르침, 그리고 인간이 혀로 짓는 온갖 죄악 ―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당신 입에서 (담즙 같은) 쓴맛이 납니다. 예수님,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천사들의 찬미와 혀를 올바르게 쓰는 다수의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찬미를 바쳐, 당신 입에서 단맛이 나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28 얽매여 계신 제 사랑이시여, 저는 당신의 목에 입 맞춥니다. 이 목에 밧줄과 쇠사슬이 치렁치렁 감겨 있는 것이 보이니, 사람들의 집착과 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29 그래서 저는 당신께 위로를 드리려고 하느님 성삼위의 나뉠 수 없는 일치를 봉헌합니다. 또한 이 일치 안에 녹아들면서 당신께 팔을 뻗칩니다. 당신의 목을 감아 안은 감미로운 사랑의 사슬이 되어, 거의 질식하실 정도로 당신을 조여 오는 집착의 밧줄들을 걷어 내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의 가슴에 당신을 꽉 껴안고 위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30 신성한 성채(城砦)시여, 저는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깨에 입 맞춥니다. 이 어깨가 사람들의 수치스러운 짓과 악한 표양들에 의해 찢겼으니, 뜯겨 나간 살점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위로해 드리기 위하여 당신의 지극히 거룩한 모범과 여왕이신 엄마의 모범 및 모든 성인들의 모범을 당신께 바칩니다. 31 오, 저의 예수님, 저는 이 상처들 하나하나 안에 저의 입맞춤을 넣고, 수치스러운 짓들 때문에 당신 성심에서 뜯겨 나간 영혼들도 집어넣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인성의 이 상처들을 아물게 하고 싶습니다. 32 호흡 곤란을 겪고 계신 예수님, 저는 당신 가슴에 입 맞춥니다. 당신 가슴이 사람들의 냉담한 마음과 미지근함과 일치 부족 및 배은망덕으로 상처를 입고 계신 것이 보입니다.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위안을 드리고자 저는 아버지와 성령의 상호 사랑을, 성삼위 사이의 완전한 일치를 당신께 바칩니다. 33 오, 제 예수님, 저는 당신 사랑 안에 잠겨, 사람들이 그들의 죄로 타격을 가할 때마다 그것으로부터 피신하실 수 있도록 당신을 보호하고 싶습니다. 또한 당신의 사랑을 가지고 가서 그들에게 사랑의 상처를 내어 다시는 당신을 모욕할 엄두가 나지 않게 하고, 그 사랑을 당신 가슴에도 쏟아 부어 고통을 덜어드리며 아픔을 낫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34 저의 예수님, 당신의 창조적인 손에 입 맞춥니다. 제 눈에 사람들의 모든 악행들이 보이는데, 이들이 같은 수의 못이 되어 지극히 거룩하신 당신 손을 꿰뚫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처럼 세 개의 못이 아니라, 사람들이 저지르는 그 모든 악행들의 수만큼 많은 못이 박힌 상태로 계시는 것입니다. 35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고통을 덜어 드리려고 저는 모든 거룩한 활동들과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피를 흘리며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들의 용기를 당신께 바칩니다. 요컨대, 오, 제 예수님, 이 수많은 악행들의 못을 모조리 뽑아내기 위하여 모든 선행들을 당신께 바쳐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36 오, 예수님, 저는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발에 입 맞춥니다. 지칠 줄 모르고 언제나 영혼들을 찾아다니시는 발. 당신은 이 발로 사람들의 모든 발걸음을 감싸고자 하십니다. 그렇건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여기에서 달아나고 있음을 느끼시고, 그들을 멈춰 세우고자 하십니다. 37 그들이 악한 발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팔다리에 못이 박힘을 느끼시기에 바로 그 못으로 그들을 당신 사랑에 단단히 박아 두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과 그들을 당신 사랑에 못 박아 두시려는 노력이 어찌나 크고 격심한지 당신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십니다. 38 저의 하느님, 저의 선이시여, 당신이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당신께 위안을 드리기 위하여 저는, 영혼들을 구원하려고 자기 목숨마저 내놓는 착하고 경건한 이들과 모든 충실한 영혼들의 발걸음을 봉헌합니다. 39 오 예수님, 저는 당신 성심에 입 맞춥니다. 당신은 유다인들로 해서 앞으로 겪으시게 될 일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든 죄가 당신께 끼치는 고통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하고 계십니다. 40 이 (고뇌의) 시간들 속에서 당신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첫째 자리에 두시고, 둘째 자리에 모든 죄를 두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죄로 인해 속죄 제물이 되시어 보속하시고,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 드리시며, 그 신적인 정의(의 분노)를 풀어 드리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셋째 자리에 유다인들을 두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당신께서는, 앞으로 유다인들의 손에서 겪게 되실 수난은, 사랑과 죄로 인한 이 지극히 쓰라린 이중적 수난의 표현에 불과할 뿐임을 보여 주십니다. 41 이런 이유로 사랑의 창, 죄의 창, 그리고 세 번째로 찔리게 되실 유다인들의 창 -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성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사랑으로 숨이 막힐 지경인 당신 성심이, 모든 마음에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격한 충동으로, 당신을 소진시키는 그 뜨거운 갈망으로 맹렬히 고동치고 있는 것입니다. 42 바로 여기 이 성심으로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께 일으키는 모든 고통을 느끼십니다. 그들은 당신 사랑을 원하는 대신, 악한 욕망과 난잡한 애정과 속되게 고동치는 심장으로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랑들을 찾아다니고 있으니 말입니다. 43 예수님, 당신은 너무나 큰 고통에 싸여 계십니다! 저희 죄악의 드센 물살에 잠겨 실신하시는 모습이 보이니, 참으로 가엾고도 애처롭습니다! 저는 당신의 소중한 엄마 마리아의 더없이 감미로운 사랑과 그 영원무궁한 감미로움을, 또한 당신을 참으로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감미로운 사랑을 당신께 바칩니다. 삼중의 창에 찔리시고 찔리실 당신 성심의 쓰라린 고통을 누그러뜨리려는 것입니다. 44 그러니 이제, 오, 저의 예수님, 제 가난한 마음이 당신 마음에서 생명을 끌어당기게 하시어, 오직 당신 마음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모욕을 받으실 때마다 제가 항상 위로와 위안과 보속을 ― 결코 중단되지 않을 사랑의 행위를 당신께 바칠 태세로 있게 해 주십시오. ❤ 성찰과 실천 45 겟세마니에서 보낸 둘째 시간 동안, 과거와 현재와 미래 곧 모든 시간에 걸친 모든 죄가 예수님 앞에 나타난다. 예수님은 당신 아버지께 완전한 영광을 돌려 드리시려고 그 모든 죄를 짊어지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속죄하시고 기도하시며 우리 마음의 모든 상태를 그분의 마음으로 느끼셨고, 어떤 경우에도 기도를 소홀히 하신 적이 없었다. 46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 이를테면, 냉랭하거나 견디기 어렵거나 유혹에 시달릴 때 - 항상 기도하는가? 우리의 변덕스러운 심기(心氣)가 저마다 예수님의 고통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완전히 본받기 위하여 우리 영혼의 고통들을 보상과 위로로 그분께 드리는가? 47 그분을 측은히 여기며 위로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예수님의 고통으로 그분 주위에 놓자. 그리고 할 수 있다면 그분께 이렇게 말씀드려야 할 것이다. “당신께서는 고통을 너무 많이 받으셨습니다. 이제 쉬십시오. 저희가 당신 대신 받겠습니다.” 48 우리는 실망에 빠져 있는가, 아니면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을 예수님께 바치면서 용감하게 그분의 발치에 머물러 있는가?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당신 자신의 인성을 발견하실 수 있도록 하는가?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인성이 되어 그분을 대신하고 있는가? 49 그렇다면 예수님은 당신 인성으로 어떻게 행동하셨는가? 당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시고 속죄하시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간구하시지 않았는가?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 속에서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지향을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우리들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온전히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가? 50 또한 어둠의 시간들에 처해 있을 때에, 다른 사람들 안에 진리의 빛이 빛나게 하고자 하는 지향이 우리에게 있는가? 그리고 열렬히 기도할 때에도, 죄로 굳어진 수많은 영혼들의 얼음덩이를 녹이고자 하는 지향을 두고 있는가? * * * 51 저의 예수님, 이토록 핍진 상태에 계신 당신께 연민의 정과 위로를 드리기 위하여 저는 하늘로 솟아올라 당신 자신의 신성을 저의 것으로 삼고, 이 신성으로 당신을 에워쌈으로써 사람들의 모든 범죄를 당신에게서 몰아내기를 원합니다. 52 당신의 아름다움을 바침으로써 죄의 더러움을 몰아내고, 당신의 성성(聖性)을 바침으로써 은총에 대해 죽어 있기 때문에 심한 역겨움을 느끼시게 하는 저 모든 영혼들의 소름끼치는 참상을 몰아내고, 당신의 평화를 바침으로써 모든 사람의 분열과 반역과 소란을 몰아내고, 당신의 아름다운 음성을 바침으로써 수많은 악한 음성들이 물밀듯이 밀려와 모욕하는 당신의 귀를 상쾌하게 해 드리기를 원합니다. 53 저의 예수님, 저는 당신께서 받으시는 허다한 모욕들과 같은 수의 신적인 보상 행위들을 당신께 바치고자 합니다. 이 모욕들이 당신께 달려들어 죽이기라도 할 듯한 기세이니, 당신 자신의 행위들로 당신께 생명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오, 예수님, 당신 신성의 물결을 모든 사람들 위에 굽이치게 하여, 그들이 당신의 신성한 손길을 느끼고 다시는 모욕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고 싶습니다. 54 오, 예수님, 이것만이 당신께서 사람들로부터 받으시는 모든 모욕에 대해 제가 함께 괴로워하며 연민의 정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55 오, 예수님, 저의 감미로운 생명이시여, 저의 기도와 고통이 언제나 하늘로 솟아올라 모든 사람 위에 은총의 빛을 내리쏟게 해 주시고, 당신 자신의 생명을 저 자신 안에 빨아 당기게 해 주십시오. 감사기도 사랑하올 저의 예수님, 당신께서는 수난의 이 ‘시간’에 당신과 함께 있도록 저를 부르셨나이다. 그리고 번민과 비탄에 잠겨 기도하시고 대속하시며 고난 받으시고 더없이 감동적이고 힘 있는 음성으로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간청하셨나이다. 저도 그 소리를 들으며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이 하시는 대로 따라 하려고 했나이다. 이제 당신을 떠나 저의 일과로 돌아가면서 감사와 찬미를 드림을 마땅한 일로 여기나이다. 그렇습니다, 오, 예수님, 저는 당신께서 저와 모든 사람을 위해 행하시고 겪으신 모든 것에 대하여 수없이 감사하고 또 찬미하나이다. 당신께서 흘리신 피 방울방울마다 당신의 숨과 심장 박동마다 모든 걸음과 말씀과 눈길마다 참아 받으신 쓰라린 고통과 모욕마다 감사와 찬미를 드리나이다. 그러므로 오, 제 예수님, 그 모든 것 안에서 저의 ‘감사합니다.’와 ‘찬미합니다.’를 도장처럼 찍어 드리고자 하나이다. 오, 예수님, 저의 온 존재가 끊임없이 당신께로 ‘감사’와 ‘찬미’의 강물을 보내게 하시어, 당신의 넘쳐흐르는 축복과 감사의 은총을 저와 모든 이 위에 끌어당기게 해 주소서. 오, 예수님, 저를 가슴에 꼭 껴안아 주시고, 저의 작디작은 부분마다 지성하신 손으로 ‘네게 강복한다.’ 도장을 찍어 주시어, 오로지 당신을 향한 찬미가만이 제게서 끊임없이 솟아나게 해 주소서. *~*~*~*~*~*~*~*~*~*~*~*~*~*~*~*~*~* '수난의 시간들'의 기도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다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시간들』을 집필한 루이사 피카레타가 이 책을 최초로 출판한 성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차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글이다. 성인은 이 글을 그 자신이 출판한 책의 ‘머리말’ 속에 게재했거니와, 이는 저자 루이사가 자신의 영적 자전적 일기인『천상의 책』 (총 36권)에서 발췌하여 별도로 옮겨 적은 것으로서, 우리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바치는 이 기도의 가치와 효과 및 예수님의 약속 등에 대한 것이다.(역주) 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으면서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 수난에 대하여 끊임없이 묵상하며 가슴 아파하고 나를 측은히 여기는 사람은 내 마음을 무척 기쁘게 하기에 내가 수난의 전 과정을 통해 겪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위로를 받는 느낌이 된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을 묵상함으로 인해 영혼은 늘 음식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데, 이 음식에는 여러 가지 양념과 맛이 있어서 다양한 효과를 낸다. 이를테면, 내 수난 중에 저들은 밧줄과 사슬로 나를 묶었지만 이 영혼은 나를 풀어 자유롭게 해 주고, 저들은 나를 업신여기며 침을 뱉고 모욕했지만 이 영혼은 내게 감사하며 침을 깨끗이 씻어 주고 나를 공경한다. 또한, 저들은 내게 가시관을 씌우며 왕이라고 놀리고 내 입에 쓸개즙을 갖다 대며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이 영혼은 나의 모든 고통을 묵상하면서 내게 영광과 영예의 관을 씌워 자기의 왕으로 공경하고, 내 입 안 가득 단맛이 퍼지도록 더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여 준다. 이 음식은 바로 나 자신의 업적에 대한 기억이거니와, 그러고 나서 이 영혼은 내게 박힌 못을 뽑고 십자가에서 나를 빼내어 자기의 마음 안에서 부활하게 한다. 그리고 그 영혼이 그렇게 할 때마다 나는 그에게 은총의 새 생명을 상급으로 준다. 그런 영혼이 나의 음식이고 나 역시 그의 지속적인 음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내 수난에 대하여 묵상하는 일이다.” (『천상의 책』 제7권 63장, 1906년 11월 9일) 2 … 내가 내 자애로우신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해 주신 말씀도 여기에 덧붙여 보면 이렇다. “딸아, 내 사랑하올 엄마는 내 수난에 대한 묵상을 그치신 적이 없었다. 이 거듭된 묵상에 의해서 그분 전체가 완전히 나로 충만하셨다. 내 수난을 거듭 생각하는 영혼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 묵상에 의해서 나로 충만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제11권 49장, 1913년 3월 24일) 3 “딸아, 내 수난에 대해서 항상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 안에 샘을 형성하고 있어서, 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샘도 더욱 확장된다. 그리고 샘솟는 물이 사람들에게 공동으로 쓰이는 것과 같이, 이 마음의 샘도 그 사람 자신의 선익과 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선익을 위해 쓰인다.”… “딸아, 네가 이 ‘시간들’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나는 이를 너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내가 행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마치 내가 수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처럼 나의 공로와 같은 공로를 준다. 이와 같이 이 기도를 바치는 이들에게도 그 지향에 따라 같은 효과를 거두게 하겠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렇게 해 주리니, 내가 이보다 더 큰 상급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그들이 내 ‘수난의 시간들’을 기도한 횟수만큼 사랑과 기쁨의 불화살을 쏘면서 내 앞에 자리하게 하겠고 그들 역시 내게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복된 이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으로 달콤한 황홀이 될 것이다!” (제11권 51장, 1913년 4월 10일) 4 (교회에는)… 대사(大赦)가… 붙어 있는 기도들이 많이 있는데 이 기도에는 그것이 없으니 이를 바치는 이들은 얻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 하며 의아해하자,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매우 다정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대사가 붙어 있는 기도를 바침으로서 사람들은 하나의 대사를 얻는다. 그 반면에, 내 ‘수난의 시간들’은 바로 나 자신의 기도요 보속이며 온통 사랑이기 때문에 내 성심 깊은 데서 솟아난다. 내가 너와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치면서 얼마나 여러 번 세상에 내릴 징벌을 은총으로 바꾸곤 했는지, 너 혹시 잊어버린 것 아니냐? 그토록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는 기도인 만큼, 나는 이 기도를 바치는 사람에게 하나의 대사가 아니라, 헤아릴 수 없도록 무한한 가치의 부를 지닌 한 움큼의 사랑을 준다.” (제11권 59장, 1913년 9월 6일) 5 『수난의 시간들』을 쓰면서 혼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복된 '수난의 시간들'을 종이에 옮겨 적는다는 것이 내게는 기막힌 희생이다. 특히, 오직 예수님과 나 사이에서만 일어난 어떤 내적 행위들은 글로 쓰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니! 이 희생에 대해서 그분께서는 내게 어떤 상급을 주실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감미롭고 다정한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딸아, ‘수난의 시간들’을 쓴 상급으로, 네가 쓴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한 번의 입맞춤 ― 한 영혼을 네게 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래서, “제 사랑이시여, 그건 제게 주실 상급이겠지요? 하지만 이 기도를 바치는 다른 이들에게는 무엇을 주시렵니까?” 하고 여쭈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이 ‘수난의 시간들’의 효과는 사람들이 나와 어느 정도로 긴밀히 일치하여 바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그들이 나와 함께, 나 자신의 뜻으로 이 기도를 바친다면, 그들에게도 역시 발음하는 낱말 하나하나에 대해서 한 영혼을 주겠다. 또한, 나의 뜻과 하나 되어 이 기도를 바침으로써 그들은 나의 의지 안에 숨어들게 된다. 따라서 활동은 나의 의지가 하게 되므로 단 하나의 낱말로도 내가 원하는 모든 선을 낳을 수 있다. 그것도 네가 이 기도를 바칠 때마다 그렇게 할 작정이다.”… “이 ‘시간들’은 모든 기도 중에서 가장 고귀한 기도이다. 내가 지상생활 동안 행했던 일과 지극히 거룩한 성사 안에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거기서 나 자신의 음성과 기도를 듣게 된다. 기도를 바치는 사람의 영혼 안에서 모든 이의 선익을 갈망하며 모든 이를 위하여 보속하고 있는 나의 뜻을 보게 되고, 그리하여 그 영혼이 행하고 있는 바를 나도 그 안에서 할 수 있기 위하여 그에게로 거처를 옮기는 나 자신을 느낀다. 오, 도시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바친다면 내 마음에 참으로 큰 기쁨이 일 것이다! 도시마다 나 자신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 테니 말이다! 그러면 이 시대에 몹시 분노하고 있는 나의 정의가 부분적으로나마 그 노여움을 풀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덧붙여 보면, 어느 날 나는 천상 엄마께서 예수님을 무덤에 안장하시는 시간 (곧 ‘제24시간’) 기도를 바치면서 극심한 비탄에 잠기신 어머니를 동정하며 끝까지 곁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묵상할 때마다 늘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간혹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늘 그렇게 해야 할지 어떨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나는 네가 그것을 빠뜨리지 않기 바란다. 내 엄마를 기억하면서 나에 대한 사랑으로 언제나 그렇게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할 때마다 내 엄마는 몸소 세상에 계시면서 당신 삶을 다시 살고 계시는 것처럼 느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어머니께서 지상 생활 동안 내게 주신 영광과 사랑을 받으시게 된다. 그리고 나는 내 엄마가 다시 세상에 계시면서 어머니다우신 자상함과 사랑과 모든 영광을 내게 주시는 것처럼 느낀다. 따라서 나는 너를 어머니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나를 껴안으시면서 아주 부드럽게 “내 엄마, 엄마.” 하셨고, 또한 자애로우신 엄마께서 이 ‘시간’에 행하시고 겪으셨던 모든 것을 내게 속삭여 주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따라 함께 하였다. 그때부터 예수님 은총의 도움으로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그렇게 하였다. (제11권 79장, 1914년 10월 ○일) 6 … “딸아, 네가 내 ‘수난의 시간들’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내 기쁨이 얼마나 큰지 네가 알면 참 좋겠다. 게다가 너도 늘 이 기도를 반복하다보면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내 성인들은 내 수난을 묵상하면서 내가 얼마나 극심한 고난을 받았는지를 깨달았고, 너무나 측은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였으며, 내 고통에 대한 사랑으로 온 몸이 불타는 듯한 체험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 기도처럼 순서에 따라 지속적으로 반복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너야말로 내 생애와 내가 겪은 것의 편린(片鱗)들을 시시각각 너 자신 안에 보존함으로써 이리도 크고 특별한 기쁨을 내게 주는 첫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너에게 나는 매우 강하게 끌림을 느끼기에 시시각각 그것을 음식으로 주고, 같은 음식을 너와 함께 먹으며, 네가 하는 일을 함께 한다. 하지만 내가 너에게 새로운 빛과 새로운 은총으로 풍부하게 보답해 주리라는 점도 알아 두어라. 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사람들이 땅에서 내 ‘수난의 시간들’을 바칠 때마다, 내가 하늘에 있는 너를 늘 새로운 빛과 영광으로 옷 입혀 줄 작정이다.” (제11권 81장, 1914년 11월 4일) 7 늘 하듯이 ‘수난의 시간들’(에 대한 묵상)을 계속하고 있노라니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세상은 내 수난을 초래한 행위들을 끊임없이 새로이 하고 있다. 나의 무한성은 인간 안팎의 모든 것을 휩싸고 있기에 이들과의 접촉으로 말미암아 내가 수난 중에 겪은 것들, 곧 못질과 가시관과 채찍질과 멸시와 침 뱉음과 여타 모든 것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도 그때보다 한층 더 심하게 겪고 있다. 그런데 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실행하고 있는 영혼들과 접촉하면 못들이 뽑혀지고 가시들이 흩어져 사라지며 상처들이 아물고 침이 다 닦인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저지르는 악이 선으로 보상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들과의 접촉이 나를 해치기는커녕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수난의 시간들’로 기도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더욱더 의지하게 된다.” 이 밖에도 복되신 예수님은 이 ‘수난의 시간들’에 대하여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혼이 이 ‘시간들’을 실행하면 나의 생각과 보속과 기도와 열망과 애정을, 심지어 내 가장 내적인 기질까지도 자기의 것으로 삼게 된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서서 나와 같은 사명을 수행한다. 공동 구속자로서, 나와 함께, ‘하느님, 당신 뜻을 이루려고 제가 왔으니, 저를 보내 주십시오(Ecce ego, mitte me).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당신께 보상하며 응답하고,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당신께 간구하나이다.’ 하고 말한다.” (제11권 82장, 1914년 11월 6일) 8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노라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온통 빛에 휩싸여 나타나셨다. 이 빛은 그분의 지극히 거룩하신 인성 안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매혹적이고 황홀한 모습이 되도록 그분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놀라움에 잠긴 나에게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겪은 아픔마다, 흘린 피 방울방울마다, 각각의 상처마다, 기도와 말과 행위와 발걸음 등등마다 내 인성 안에 빛을 낳았으니, 이 빛이 천상의 모든 복된 이들을 황홀하게 할 정도로 나를 아름답게 꾸몄다. 이제는 영혼이 내 수난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따뜻한 동정심을 표현하며 보속과 또 다른 행위들을 할 때마다, 내 인성으로부터 빛을 끌어내어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미화된다. 그러므로 내 수난에 대한 생각을 하나 더할 때마다 그것이 그에게 영원한 기쁨을 가져올 또 하나의 빛이 된다.” (제11권 121장, 1916년 4월 23일) 9 ‘수난의 시간들’을 묵상하고 있노라니 복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내가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 수천수만의 천사들이 내 인성을 수행하면서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모아들였다. 즉, 나의 발걸음과 활동과 말을, 심지어 나의 탄식과 고통과 내 핏방울들을 요컨대 모든 것을 다 모아들였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보호할 책임을 맡고 나를 흠숭하며 내 모든 지시에 따르기 위하여 파견된 천사들이었으니,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 가져가려고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 천사들은 지금도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어서, 어떤 사람이 내 생애와 내 수난과 내 피와 내 상처와 내 기도를 기억하고 있으면 그 사람 주위를 에워싸러 온다. 그의 말과 기도, 나에 대한 동정심, 그의 눈물과 예물을 모아서 나의 것들과 합하여 내 어좌 앞으로 가져옴으로써 나 자신이 지상에서 보낸 생애의 영광을 새로이 하려는 것이다. 이 천사들은 매우 큰 기쁨에 싸여 그 사람의 기도소리를 들으려고 공손하게 기다리며 함께 기도한다. 그러므로 이 ‘시간들’을 기도하는 사람은 마음을 집중하여 경건하게 기도해야 한다. 천사들이 그를 따라 하려고 그의 입술에 주의를 쏟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이 ‘시간들’은 사람들에게서 쓰디쓴 괴로움을 많이도 받고 있는 나에게 달콤한 음료 몇 모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내가 받는 저 쓰디쓴 물의 엄청난 양에 비하면 이 단물은 너무나 적다. 그러니까 이 기도를 더 널리 전파해야 한다. 더 널리!” (제11권 132장,1916년 10월 13일) 10 “… 나는 네가 내 고통과 내 기도와 나 자신 전체를 네 것으로 삼기 바란다. 그러면 내가 네 안에서 또 하나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대에는 크나큰 보상이 요구되는데, 나를 자기 자신으로 삼은 사람만이 그것을 내게 줄 수 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보신 것, 곧 영광과 기쁨과 사랑과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한 전적이고 완전한 보상을 이 영혼들 안에서도 보고 싶다. 나와 엇비슷한, 같은 수의 다른 예수들을 말이다. 그러므로 너는 ‘수난의 시간들’ 중 매시간 기도를 바칠 때마다 각각의 행위와 모든 것 속에서 이 지향을 반복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보상을 얻지 못한다면, 아, 이 세상은 끝장이 나고 말 것이다! 징벌에 징벌이 억수 같이 쏟아질 테니 말이다. 아아, 딸아! 딸아!” (제11권 138장, 1916년 12월 9일) 11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다가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음을 알았는데, 언제나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피를 뚝뚝 흘리시며 끔찍한 가시관을 쓰고 계셨다. 눈을 찌르는 가시들 사이로 간신히 나를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딸아, 이 세상이 마음의 평형을 잃게 된 것은 내 수난에 대한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비추어 줄 내 수난의 빛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 빛을 찾아내었더라면 나의 사랑을 알려 주고 영혼들을 구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게 했는지를 알려 주었을 것이니, 세상이 자기를 참으로 사랑한 분에 대한 사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내 수난의 빛이 세상을 인도하면서 모든 위험에서 지켜 주었을 것이다. 나약함 속에서, 세상은 자기를 떠받쳐 주었을 내 수난의 힘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참을성 없음 속에서, 세상은 자기에게 평온과 고요한 자기 포기의 정신을 불어넣었을 내 참을성의 모범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찾아내었더라면 내 참을성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기 지배를 마땅한 의무로 여겼을 것이다. 고통 속에서, 세상은 고통을 지탱해 주며 고통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어 주었을 하느님 고통의 위로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죄 속에서, 세상은 그것과 마주 서서 그 안에 죄에 대한 증오를 불어넣었을 나의 거룩함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아! 인간은 이렇듯 모든 것을 악용했다. 모든 것 속에서 자기를 도울 수 있는 분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세상이 평형을 잃은 것이다…” (제11권 143장, 1917년 2월 2일) 12 … 그 뒤 나는 나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었다. 연옥 영혼들과 성인들로 보이는 많은 영혼들 가운데 있었는데 그들은 내게 말을 걸면서 얼마 전에 죽은, 내가 아는 한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이 ‘수난의 시간들’의 날인을 지니지 않고 연옥에 들어오는 영혼이 하나도 없음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영혼들이 이 ‘시간들’의 호위와 도움을 받으며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요. 또한 이 ‘수난의 시간들’의 동반을 받지 않고 천국으로 날아드는 영혼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이 ‘시간들’은 천국에서 땅으로, 또 연옥과 하늘에까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이슬이랍니다.” … 나중에 나 자신 안으로 돌아오자 다정하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그것이 사실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이 ‘시간들’은 우주의 질서이다. 그러기에 하늘과 땅을 조화롭게 하고, 나로 하여금 세상을 멸하지 못하게 한다. 나의 피와 상처와 사랑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이,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하여 두루 흘러가고 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할 때에 나는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나의 피와 상처와 열망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곧 내 생명이 거듭 재현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사람이 어찌 모든 선을 얻어 낼 수 있겠느냐? 네가 의아해하는 까닭이 무엇이냐? 이 일은 너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너는 유한하고 나약한 도구 노릇을 해 왔을 뿐이다.” (제12권 10장, 1917년 5월 16일) 13 내가 어떤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면서 임종 중인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을 때에 사랑하올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왜 걱정하고 있느냐? 내 수난에 대한 낱말마다, 각각의 생각과 연민과 보속 및 내 고통에 대한 기억마다, 그 모든 것이 나와 이 영혼 사이에 열리는 통신 전선들이 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그것이 그만큼 많은 수의 다양한 아름다움으로 그녀를 단장한다는 것을? 이 영혼이 ‘수난의 시간들’ 기도를 실천했으니, 나는 내 피를 옷처럼 입혀 주고 내 상처로 단장하여 내 수난의 딸로 받아들이겠다. 이 꽃은 너의 마음 안에서 자라난 꽃이다. 그러기에 내가 이를 축복하여, 내가 각별히 사랑하는 꽃으로 내 마음 안에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내 가슴에서 꽃 한 송이가 나와서 그분께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제12권 55장, 1918년 7월 12일) 14 다정하신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고 있노라니 그분께서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아, 영혼이 내 수난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겪은 것을 기억하거나 나를 측은히 여길 때마다, 내 고통이 그 영혼에게 새로이 적용된다. 내 피가 솟아나서 그를 잠그고, 내 상처들이 그를 치유하거나 단장한다. 그가 상처를 입고 있으면 치유해 주고 건강하면 아름답게 단장해 주는 것이니, 내 모든 공로가 그를 부유하게 한다. 그러니까 영혼은 매우 놀라운 장사를 하는 셈이다. 내가 행했고 겪었던 모든 것을 판매대에 놓아 이윤을 갑절로 남기니 말이다. 사실, 내가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은, 태양이 지구에 빛과 열을 끊임없이 주고 있는 것과 같이, 지속적으로 사람에게 베풀어지고 있다. 나의 업적은 고갈되는 법이 없다. 영혼이 원하기만 하면 원할 때마다 내 생명의 열매를 받는다. 그러므로 내 수난을 스무 번, 백 번, 천 번 기억하면, 그만큼 더 많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이를 소중한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얼마나 적은지! 내 수난의 모든 선익에도 불구하고 허약한 영혼들과 소경과 귀머거리와 다리를 절고 있는 이들을 민망스럽도록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영혼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 수난이 잊혀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 고통과 상처와 피는 허약함을 없애는 힘이요, 소경에게 시력을 주는 빛이며, 혀를 풀고 청각을 열어 주는 혀이고, 다리를 절고 있는 이들을 똑바로 걷게 하는 수단이며,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생명이다. 온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치료제가 내 생애와 수난 안에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약을 무시하고 이 치료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구원 사업에도 불구하고, 마치 불치의 폐병에 걸리기나 한 듯 죽어 가는 인간의 처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가장 비통하게 하는 것은, 교의나 신학 이론이나 역사 따위의 탐구에 매진하는 교인들이 정작 내 수난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을 보는 일이다. 그러므로 내 수난은 번번이 교회에서 쫓겨나고, 사제들의 입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사제들의 말에 빛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니, 그들의 말을 들은 이들은 전보다 더 굶주린 상태로 있게 되는 것이다.”… (제13권 26장, 1921년 10월 21일) 15 … “딸아, 나의 수난에 대해 생각하면서 고통 중에 있는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매우 내 마음에 드는 일이다. 나 혼자 고통을 겪지 않고, 피조물이 ― 내 고통의 원인이며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피조물이 나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와 함께 있음을 느끼기에, 고통이 내게 더욱 감미로운 것이 되기도 한다. 홀로 외롭게 고통을 겪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홀로 고립되어 있는 나 자신을 보면, 내 고통을 맡길 사람도, 이 고통이 지닌 열매를 줄 사람도 없어서, 고통과 사랑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나는 내 사랑이 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질 때 너에게 온다. 네 안에서 고통을 겪는 것이다. 네가 나와 함께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인 것으로 겪으면서 내가 내 인성으로 행하고 겪었던 모든 것을 반복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의 수난을 현행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다만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먼젓번 것은 내 고통을 거듭 겪고자 나를 대신하는 내 생명의 행위이기에, 내가 신적 생명의 효과와 가치를 돌려받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내 고통을 생각하며 나를 측은히 여기는 것은 나로 하여금 피조물과 함께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데, 너는 아느냐? 내가 어떤 사람 안에서 내 수난 고통을 현행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지를? 바로 내 뜻을 생명의 중심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 안에서다. 나의 뜻만이 연속적인 행위들이 뒤따르지 않는 단일한 행위이다. 이 단일한 행위는 결코 변동이 없는 하나의 점에 고정된 듯 있고, 그 점은 곧 영원이다. 그러니 단일하면서도 원초적이고 끝없는 행위이다. 그 둘레가 무한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기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만물과 만인을 단 하나의 포옹으로 싸안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는 창조사업과 구원사업과 성화사업이 단 하나의 행위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일한 행위이기 때문에 모든 행위들을 오직 하나의 행위인 것처럼 그 자신의 것으로 삼을 능력이 있다. 나의 뜻 안에서 사는 사람은 바로 그 단일한 행위의 소유자이다. 그러니 내 수난 고통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동참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18권 9장, 1925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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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바라며, 하느님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거룩한 사람들만이 사제의 위대함을 제대로 볼 줄 알았다(1975.7.29) ╋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수난의 공로로 하느님의 뜻 안에서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장한상요셉과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저의 죽은 형제들, 곽판수와 박일조 마리아, 한재권, 곽무순, 양판영 부부, 양길영 부부, 양호영,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주소서!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성인의 통공)♥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미카엘의 믿음의 배필, 후손들과 장 이냐시오를 비롯한 형제자매들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자비와 은총과 축복과 용서를 베푸소서!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성인의 통공)♥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8월 15일이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 뜻의 위대성을 찬미하고 흠숭하는 '하느님의 뜻 축일'이 예수님이 루이사에게 말씀하신 것이 하루빨리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간청하며 애원합니다. 이루어주소서!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암이나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고통을 봉헌하며,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피앗! 피앗 미히!♥ ♥하느님! 수난 공로의 예수님과 함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전쟁에서 죽거나 고통당한 모든 이들과 혹은 대신하여 하느님의 뜻 안에서 그들의 죄와 배은망덕한 것에 대해 보속의 기도드립니다. 이들의 영혼을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 구원해주소서! 피앗! 피앗 미히!♥
♥예수님의 뜻 안에서 안토니오 비오가 봉헌하는 미사와 기도와 바램에 축복과 구원과 자비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예수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하느님! 온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찬미 흠숭 사랑하는 하느님의 뜻 십자가 동산/길이 생겨 하느님께 영광을 바치게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예수님, 저는 예수님 뜻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2023년에는 하느님의 뜻 안에 사는 사람이 온 세상에 많아지기를 기도드립니다. 피앗 볼룬타스 투아! 2023.03.24. 성령 안수 2023.04.25. garabandaltv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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