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8주간 화요일]오늘 다시 보라 하신다. (마르10,28-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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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5-30 | 조회수40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연중 제8주간 화요일] 오늘 다시 보라 하신다.
복음(마르10,28-31) 28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앞~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고 말씀하신 그때이다. 우리는 그 부자(富者)의 구원을 위해 그 자기 의(義), 재물(財物)을 부수심으로, 없애심으로 작은 자로 만들어 낙타 바늘귀를 빠져나가게 하신다고, 그리고 그 부수심이 하느님의 자비(慈悲)라고 공부했다. <‘바늘귀’란 성(城)을 드나드는 아주 작은 문의 이름이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곧 부수어 없애고 따른다고 말씀을 드린 것이다.
29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 예수님 때문에, 복음(福音)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통한 구원(救援), 곧 우리 신앙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다. 또한 그 아드님을 대속의 제물로 내주신 하느님께 감사,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부모형제를 버렸다는 것은, 이 땅의 것을 위해 뭉친 가족관계(家族關係)는 참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부인(否認), 버림이다.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 29절에 있는 아버지가 빠져있다. - 아버지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복음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나라(땅-집)에서 (이미 이 땅에서부터)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 서로 완전(백배)한 형제자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이다. 모두 그렇게 하느님을 아버지로, 하느님 나라의 가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 자기 의(義)로 첫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꼴찌인 것이고, 죄(罪)로 꼴찌라고 하는 사람이 첫째가 된다는 말씀이다. 곧 첫째인줄 아는 그 사람의 자기 의(義)는 하늘의 대속(代贖) 그 의(義)로 부수시고(인간의 의(義)는 구원(救援)이 없다고), 자신의 죄로 꼴찌인줄 아는 그 사람은 하늘의 대속(代贖), 그 구원의 의(義)를 주시는 그 자비(慈悲)로, 모두 구원(救援)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慈悲)를 다시보자~ (루가1,52-53) 52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 그런데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慾望) 때문에, 곧 자신들이 원(願)하는 것을 주님으로부터 얻어내기 위해 따랐던 것이다.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시는 것이다. 어제 묵상했듯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 사랑 때문에 세상 부귀와 영화와 권세, 행복도 필요 없다고 슬픔과 괴로움 밀려와도 영원히 주님만을 의지하겠다고, 세상 즐거움, 명예 다 버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 수는 없다고.....” 열심히 성가(聖歌)로 신앙고백(信仰告白)을 했는데, 그것이 ‘진심(眞心)이었나’ 말이다. 우리의 뜻, 소원을 위해 ‘미사. 기도’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자비)이 우리(나)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祈禱)’했는가. 아니지 않은가. 모두 위선(僞善)일 뿐이다. 어제 묵상했듯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며, 말씀을 잘못 듣고, 잘못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다시 배우라고 하시는 것이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의 속셈을 보고 ‘다시 시작(始作)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히브4,12) 12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독서(1베드1,10-16) 10 영혼의 구원에 관해서는 여러분이 받을 은총을 두고 예언한 예언자들이 탐구하고 연구하였습니다. 11 그들 *안에서 작용하시는 그리스도의 *영께서 그리스도께 닥칠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증언하실 때에 가르쳐 주신 구원의 시간과 방법을 두고 연구하였던 것입니다. 12 예언자들은 그 일들이 자신들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 *일들이 하늘에서 파견된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이들을 통하여 이제 여러분에게 선포되었습니다. 그 일들은 *천사들도 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13 그러므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받을 은총에 여러분의 *모든 희망을 거십시오. 14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무지하던 때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15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서 거룩해 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피(血)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씻겨 거룩해 졌기에 하늘을 희망하며 거룩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작아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아니 살아보는 것이다. 자주 넘어질 것이다. 그랬을 때, 예수님의 피로 이미 거룩해 졌음을 자각(自覺)하며 다시 일어나 가는 것이다. 욕망(慾望)과 위선(僞善)의 베드로가 그 자신을 부인(否認)하며 참 사도(使徒)가 되도록 이끄셨던 보호자 성령(聖靈)께 의탁하며 해 보는 것이다. 가(行) 보는 것이다.
☨보호자이신 천주의 성령님! 우리의 욕망, 속셈을 위한 신앙이 아닌 하느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 그 복음으로 우리 영혼의 구원과 그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모든 희망을 걸게 허소서. 힘을 주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몇일을 먼길 다녀왔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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