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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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5-31 | 조회수669 | 추천수7 | 반대(0) |
이스라엘에는 성지가 많습니다. 그중에서 오늘 축일로 지내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장소인 ‘아인카렘’은 산 속에 있는 아름다운 동네입니다. 복음서는 마리아가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했다고 전합니다. 엘리사벳은 이미 아이를 잉태한지 9개월이 되었습니다. 이제 막 아이를 잉태한 마리아는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3개월을 머물렀다고 합니다. 아인카렘 동네에서 마리아의 방문 성당까지 30분 정도 걸어가면 됩니다. 약간의 비탈을 올라가면 동정마리아의 방문 성당이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성당 입구에는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서로 마주보며 인사하는 동상이 있습니다. 성당 마당에는 각 나라의 말로 ‘마리아의 노래’가 붙어 있습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아름다운 성당이 있습니다. 벽에는 성모님과 관련된 성화가 있습니다.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성화, 교회의 어머니라는 성화, 은총의 중개자인 마리아를 의미하는 가나의 혼인 잔치 성화, 성모님께 전구하여 승리했던 레판토 해전의 성화, 성모님이 원죄 없이 잉태되었음을 전하는 성화가 있습니다. 성모님과 엘리사벳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첫 만남이기도 한 장소입니다. 저는 1982년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신학교의 교가 ‘진세를 버렸어라, 이 몸마저 버렸어라, 깨끗이 한 청춘을 부르심에 바쳤어라. 성신에 그느르심 아늑한 이 동산에 우리는 배우리라 구원의 베리타스(Veritas)’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41년 동창들과 함께 지냈으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앳된 젊은이들이 이제 모두 60이 넘었습니다. ‘삼인행이면 필유아사’라는 말처럼 친구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친구들의 좋은 점을 많이 보았습니다. 독학으로 오르간을 배워서 어려운 ‘토카타와 푸가’를 연주한 친구도 있습니다. ‘삽자루’라는 별명처럼 신학교의 굳은 일을 도맡아서 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멋진 노래로 분위기를 살려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말이 없지만 있는 그 자체로 빛이 나는 친구도 있습니다. 힘들게 필기한 것을 기꺼이 나누어 준 친구도 있습니다. 방학 때면 나환자 마을로 봉사를 갔던 친구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서 하느님을 찬양했듯이, 동창들과의 만남으로 앳된 젊은이들이 부르심에 응답한 사제가 되었습니다. 노 사연은 ‘만남’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잊기엔 너무한 나의 운명 이였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뉴욕에 와서 운명처럼 만난 분들이 있습니다. 4년 동안 함께 신문을 만드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직원미사를 하고, 매주 수요일 직원회의를 합니다. 매주 신문을 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모두들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3년 동안 함께 하는 ‘동북부 엠이’ 모임이 있습니다. 함께 했기에 팬데믹의 파도를 넘어 설 수 있었습니다. 피정, 나들이, 주말체험은 제게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3년 동안 함께 하는 ‘부르클린 한인 성당’이 있습니다. 공동체는 저의 서품 30주년을 축하해 주었고, 저의 회갑도 축하해 주었습니다. 제가 도움을 주는 것 같았지만 제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하듯이, 사제는 신자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4년 동안 함께하는 ‘동북부 사제 모임’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만나서 하느님을 찬양하였듯이, 사제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고, 팬데믹이라는 시련을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에 묵상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글을 통해서 저의 내면과 만납니다. 그 만남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그 만남이 제게 힘과 용기를 줍니다. 성찰과 묵상이 있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에너지를 이웃들과 나눌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욕심과 교만이 가득차 있으면 우리는 만남을 통해서 위로를 받기 어렵습니다. 만남을 통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마음을 열면 길가의 꽃에게서도, 하늘의 구름에게서도, 불어오는 바람에서도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닫으면 아무리 좋은 글을 읽어도, 좋은 사람을 만나도 배울 것을 찾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는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찾아온 마리아를 축복하여 주었고, 마리아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찬가를 부릅니다. 이것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그러나 우리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마음에 품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오늘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해서 ‘마리아의 노래’를 불렀듯이 우리들 또한 각자의 노래를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하는 신앙의 노래를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그분 이름은 거룩하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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