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9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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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6-06 | 조회수53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연중 제9주간 화요일] 마르 12,13-17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종교적 성격이 강했던, 그래서 오직 하느님의 통치만 인정했던 바리사이들은 로마 제국에 세금 내는 것을 반대했고, 세속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던, 그래서 강대국인 로마에 부역하여 이익을 취했던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로부터 보호와 통치를 받고 있으니 세금을 내는게 당연하다고 주장했지요. 이렇듯 서로 반대되는 신념을 갖고 있던 그들이었으니 사이가 좋을 리 만무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힘을 하나로 모읍니다. 눈엣가시 같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그런 시커먼 속내를 품고 예수님께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집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세금을 내야한다고 하면 점령국인 로마의 편을 든다는 이유로 민족의 반역자가 될 것이고,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로마의 지배를 거부하고 반역을 도모했다는 이유로 정치범이 될테니 어느 한 쪽도 선택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런 얕은 수에 쉽사리 넘어가실 우리 예수님이 아닙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그 문제를 꿰뚫는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채시고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달라고 하시지요.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 주머니에서 그 동전을 꺼내 예수님 앞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행동이 그들 스스로 자기 발에 올무를 거는 일이 되었습니다.
‘데나리온’은 당시 로마를 다스리던 티베리우스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동전입니다. 그런 동전을 지니고 다니며 사용한다는 것은 좋든 싫든, 의도하든 그러지 않았든 이스라엘이 로마의 통치권 안에 든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동이었지요. 이미 자기들 스스로, 자연스러운 삶과 행동으로 로마의 지배를 인정하고 있으면서, 그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문제 삼는건 심각한 위선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야’합니다. 좋든 싫든 내가 그 나라에 속하여 보호를 받고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그 나라의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는게 당연하지요. 게다가 ‘납세’는 한 나라의 국민이 지켜야 할 아주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의무입니다. 그러니 답은 이미 ‘내야 한다’로 정해져있는 겁니다.
대신 예수님은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상기시키십니다. 우리는 몸으로는 세상의 나라에 속한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느님 나라에 속한 그분 백성으로서의 의무에도 최선을 다해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라는 말씀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그 일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먼저 생각하고, 내가 하는 그 일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를 바라는 지향으로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합당한가, 합당하지 않은가?’, ‘해야 하나, 하지 말아야 하나?’라는 선택의 문제에 마주하게 되고, 대체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호하고 막막하여 깊은 고뇌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 때 선택의 기준을 ‘하느님의 뜻’에 두면 복잡하고 어렵게만 보이던 그 문제가 단순하고 분명해져 의외로 쉽게 풀릴 겁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의 저울을 바라보며 묵상해봅시다. 그 저울의 눈금이 ‘하느님의 것’과 ‘세상의 것’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얼마만큼 더 기울어져 있는지. 아마 대부분의 경우 세상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급하게, 억지로 하느님 쪽으로 눈금을 잡아당기려고 들다가는 저울이 망가집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세상 쪽에 많이 올라가 있는 무게추를 하느님 쪽으로 하나씩 옮기면 됩니다. 신앙생활은 내 마음의 무게추를 하느님 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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