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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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10 조회수290 추천수4 반대(0) 신고

요즘 저가 고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께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관계 안에서 기뻐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다른 것에 집중하는 저가 좀 불쌍해 보입니다. 관계 안에서 좋은 열매를 낳고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아침 새벽 4시 50분에 일어나서 씻고 일터로 나갑니다. 그곳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저녁 늦게 도착합니다.

 

도무지 인간관계도 없고 그냥 일만 하다가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일터 에서도 그렇게 생산적이지 못하고 일만하고 집으로 옵니다. 참 그런 생활이 저의 전부인 것입니다. 단지 저의 삶에 숨통이라면 아마도 묵상 글을 쓰는 순간입니다. 주님 만나는 순간이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묵상 글을 읽을 때 그때 세상과 소통하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이 저에게 유일한 오아시스 같은 순간입니다. 저가 드리는 묵상 글도 평상시에는 좀 충실도가 너무 부족합니다. 시간을 쪼게고 쪼게서 묵상 글을 쓰기에 충실도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주님과 소통하고 세상과 소통하기에 저에게는 매우 기쁜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으로 돌아가서 보면 바리사아이의 혀욕과 가난한 과부의 삶이 나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바리사이가 더 행복해 보이고 가난한 과부가 더 불행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바리사이는 돈이 풍족하게 있고 돌아가면 즐겁게 웃을 수 있는 가족이 있고 먹을 것이 풍족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가진것을 전부 헌금함에 넣었고 항상 돈에 허덕이는 삶이 보입니다. 빈궁하면서 행복하다고할 수 없겠지요.

 

그런 가난한 과부를 주님은 더 하느님 관점에서 높이 칭찬합니다. 왜?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녀는 더 집중하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에게 올인하였기에 그럿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영광에 모든 것을 바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자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부활하신 모습인데 그 빈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예수님의 무덤입니다. 빈 무덤에 아무것도 있지 않았습니다. 

 

빈 무덤을 체울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영광만이 체워질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실때도 주님은 피와 물 모두 세상에 내어 놓고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에 투신 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라는 것도 이와 같이 나의 모든 것을 던질수 있어야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나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주님 영광 위해 달리고 있는지 매 순간 성찰해 보아야겠습니다. 잘 살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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