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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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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11 조회수304 추천수3 반대(0) 신고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가해] 요한 6,51-58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우리 조상들은 가을이 되어 나무에 열린 과일을 거둘 때, 위 쪽에 달린 몇 개는 따지 않고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까치밥'이라고 부르는 전통으로, 추운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한 새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그들을 위한 양식을 남겨둔 넉넉한 마음씀씀이였지요. 그러면 새들은 배고플 때 그 과일을 쪼아먹으며 혹독한 겨울에도 삶을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산행길에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재미 삼아 줍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도토리 몇 개를 줍는다고 묵을 쒀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재미'로 줍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재미' 때문에 그 도토리 몇 개를 열심히 모아 겨울을 나야하는 다람쥐들은 굶게 됩니다. 누군가를 위해 '밥을 남기는 삶' 과 누군가에게서 '밥을 빼앗는 삶'. 어쩌면 사소해보이는 선택이지만 그 결과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만들게 됩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총을 상기시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툭하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할 때가 더 좋았다'며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고, 반복되는 우상숭배와 배신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으로 품으셨다는 것입니다. 풀 한포기 나지 않고 물 한방울 구할 수 없는 척박한 땅 '광야'에서 '만나'로 자기들을 먹여살리시고, 바위에서까지 물이 솟아나게 하시어 목마름을 풀어주신 하느님,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더 이상 이집트 땅에서 먹던 '고기와 빵'에 집착하지 않고, 물질적인 것을 최고로 여기는 잘못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계명을 따라 걷는 것만이 ‘영원한 생명의 땅’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일깨워주시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광야의 여정'을 걷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의 기름진 땅이 내어주는 풍족한 소출에 취해 하느님이 아닌 재물과 물질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무 빵이나 먹지 말고 가려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물질적인 빵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당신 몸을,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유다교의 율법에서는 ‘피’를 하느님께만 온전히 속하는 생명의 표지로 보기에 동물을 잡아 먹더라도 그 피를 먹는 것은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그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생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스스로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신 분이 가장 기본이 되는 율법조항을 어기라고 하시니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예수님의 그 말씀에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며 이렇게 따집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의 몸과 피를 사람들이 먹을 양식으로 내어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의 문제에만 집중해서 들었기에 생긴 오해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가 아니라 '왜'의 문제입니다. 즉 예수님이 '빵'이 되고자 하신 마음과 이유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빵'이 되신 이유는 깊은 슬픔과 끔찍한 고통이 밀려와사는게 힘겨워도, 도저히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지라도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우리를 다독이시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이 아니라, 영과 육 모두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어있는 자세로 하느님 앞에서 마음과 정신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야 구원받을 길이 열리기 때문이겠지요.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예수님의 몸을 받아 먹습니다. 그러나 영성체 예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먹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뜻과 지향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매 주일미사 때마다 그 누구보다 거룩하고 진지한 태도로 주님의 몸을 받아모시면서도, 정작 삶의 자리에선 그분의 뜻과 상관없는 모습으로 산다면 그것은 주님 안에 머무르는 삶이 아닙니다. 내가 받아모신 성체를 욕되게 하는 일이며,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과 사랑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뜻 안에 머무르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그것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삶입니다. 즉, 누군가에게 '밥'이 되어주고, 살아갈 힘과 이유가 되어주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자신이 모신 예수님의 몸을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 사랑과 희생으로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모시는 '완성된 영성체'가 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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