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학자 기념] 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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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6-13 | 조회수29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학자 기념] 마태 5,13-16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아름다운 미술품들이 ‘예술 작품’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모습이 드러나야 합니다. 어둡고 컴컴한 창고 안에서 먼지만 쌓여가는채로 방치된다면 그건 그냥 값 비싼 ‘짐’일 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예술성에 감탄하고 거기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하며 감동 받을수 있어야 비로소 그 작품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께서 직접 빚어 만드신 아름다운 예술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뜻을 따르는 말과 행동을 통해 우리를 빚어만드신 하느님의 섭리와 사랑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중요한 소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위로와 감동을 받으며 하느님께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할 소명을 외면한 채 창고 안에, 어둠 속에 몸을 숨기려고 합니다. 기도와 미사를 통해 마음의 위로는 얻고 싶어하면서도, ‘봉사’는 나몰라라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마음의 평화는 얻고 싶어하면서도, ‘희생’은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빛과 소금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예술작품’답게 살지 못하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하시는 것이지요.
소금은 짜야 소금입니다. 등불은 밝게 빛나야 등불이지요. 그런데 소금이 짠 맛을 내기 위해서, 등불이 빛을 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 있습니다. 자신을 녹이는 것. 즉 희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소금은 제 몸을 물에 녹이면서 짠 맛을 내고, 등불은 제 몸을 불에 태우면서 빛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녹기 싫다고, 등불이 타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며 제 소명을 외면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녀석을 소금이라고, 등불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짠 맛을 낼 용기도 없으면서, 빛을 낼 의지도 없으면서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제 몫을 요구하기만 하는 쓸모 없고 얄미운 존재가 될 뿐입니다.
내 몸을 녹여도 나라는 존재 자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알맞게 간이 벤 ‘맛있는 세상’과 온전히 하나되어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내 몸을 태워도 나라는 존재 자체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둠이 걷힌 ‘밝은 세상’에서 하느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작품들을 제대로 바라보며 그 본연의 가치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몸을 녹이고 태우는 과정, 즉 남을 배려하며 양보하고 희생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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