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화해하여라!”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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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6-15 | 조회수434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화해하여라!” -사랑의 화해도 은총이자 선택이요 훈련이자 습관이다- 내 안의 괴물들을 사랑의 인내와 훈련으로 길들이기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나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리라.”(시편27.1-2)
“화해하여라!” 화해도 은총이자 선택이요 훈련이자 습관입니다. 내 안의 괴물을 사랑의 훈련으로 길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저절로 화해가 아닙니다. 바로 끊임없는 기도와 끊임없는 회개가 전제되는 화해입니다. 참으로 화해의 종류는 다양하여 끝이 없습니다. 어찌보면 삶은 “화해의 여정”일 수 있습니다.
주님과 깊어지는 일치와 더불어 화해요 그에 따르는 순수, 겸손, 자비, 겸손입니다. 넷인 듯 하나 하나이고 바로 예수님이 그 원조가 됩니다. 그러나 순수가 우선입니다. 순수의 힘은 하느님의 힘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갈 때, 순수와 겸손이요 자비와 지혜입니다.
“죽음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하는 것이다.” 이미 타계한 세계 최고의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평생 수십년간 애독했던, 또 무수한 영감에 강론에 많이도 인용했던 세권의 책이 있습니다.
조셉 캠벨의 이윤기가 번역한, 위의 지혜의 말씀이 담긴 책 “신화의 힘”이고, 니코스카잔스키스의 안정효가 번역한 “영혼의 자서전”이며, 여호슈아 헷쉘의 이현주가 번역한 “사람을 찾는 하느님”입니다. 성서와 더불어 평생 보관하여 읽는 책입니다. 특히 수려秀麗한 번역은 원문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어제는 어머님 18주기 기일을 맞이하여 어머님 성묘에 다녀왔습니다. 2005년은 수도원 개원이래 초유의 위기와 혼란을 겪던 해였고, 큰 가닥이 잡히고 정리되자 그해 6월14일 선종하셨습니다. 어머님의 기도의 힘이라 믿습니다. 어머님과 합장된 아버지를 위해서도 기도했고, 인근 묘원에 있는 작은 어머님, 그리고 첫째 요셉 형님 묘소에서도 기도했습니다. 특히 돌아가신 분들과 죽음과 화해한 듯 참 내적인 평화와 고요를 느꼈습니다.
제가 수도원을 찾을 때마다 꼭 방문하는 곳이 수도원 묘지입니다. 안식년중 만3개월 미국 뉴저지주 뉴튼 수도원에 머물때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찾았던 곳이 수도원 묘지입니다. 이 또한 죽음은 물론 하느님과 주변 이웃과 내 자신과 화해하며 영적전의를 새로이 했던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 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말씀이 몸과 맘에 밸 때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깊이의 화해의 삶을, 순수와 겸손, 자비와 지혜의 삶을 살게됩니다. 이와 더불어 떠오르는 제 좌우명이요 묘비명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자작 고백 좌우명시이자 장차 묘비명이기도 합니다.
“화해하여라!” 바로 오늘 산상설교 3일째 복음 소주제입니다. 우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첫 번째 길이 바로 화해입니다. 살인의 근본 뿌리인, 내 안의 괴물같은 실재인 분노와 멸시의 감정을 다스리고 길들여 화해하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나에게 내재한 괴물들입니다. 가라지가 없는 밀만의 현실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한 화해와 조화의 삶이 필요합니다. 이래야 화해火海의 태풍은 미풍의 화해和解로 변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말고 태풍을 미풍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바로 화해와 절제의 훈련이 이를 가능하게 합니다. 내 안의 괴물을 발본색원 뿌리 뽑을 수는 없습니다. 교황님의 “잡초는 결코 죽지 않는다(Weeds never die)”는 말씀도 이런 진리를 의미합니다.
100% 순수는 없습니다. 조화와 화해의 순수요, 내 안의 괴물을 사랑의 인내와 훈련으로 잘 길들여 갈수록 평화 공존의 순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형제를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자들은 내 안의 괴물을 길들이지 않은 자들이나 못한 자들입니다. 화해의 영적훈련이 습관이 전무한 자들입니다. 정말 내 안의 괴물들을 방치할 때 그 인생 괴물이나 폐인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예물을 바치려 할 때 원망을 품고 있는 자와 화해하고 예물을 바치라 권고하는 주님이요, 고소한 자와도 신속히 타협, 화해하라는 말씀입니다. 괴물의 유혹에 빠져 미풍을 태풍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며 태풍도 가능한한 미풍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과 마음이라면 절대 미사 못합니다. 그래서 예전 원장 재직시 수도 형제들과의 관계가 무례와 불손으로 몹시 불편할 때, 형제가 분명 잘못했는 데도 사과가 없을 때 제가 먼저 불러서 사과하고 미사했던 일이 여러번 생각이 납니다. 또 저에게 몹시 심한 패악질을 한 형제가 미사전 무릎을 꿇고 고백성사후 미사를 드렸던 일도 생각납니다. 이런 경우는 한없이 고맙고 감동스럽고 제 자신도 회개하게 됩니다.
어제 수도원에 돌아와 보니 책임감 강한 착한 수련 수사가 새책 “성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구입하여 제 방 편지함에 꽂아 놓았기에 감사인사 전했습니다. 1991년 초판본을 32년간 사용하다 받은 2017년 7쇄의 새책입니다. 앞으로도 새책과 더불어 32년동안 공부하고 가르쳤기에 색도 바래고 많이 낡았지만 역사가 배어있기에 과거와 화해하는 마음으로 계속 영구보존할 생각입니다.
이 화해하는 마음 모두는 은총과 훈련의 노력을 통해 내 안의 괴물들을 사랑의 인내와 훈련으로 잘 길들여 갈 때 가능합니다. 바로 이런 이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를 사는 이들입니다. 바로 이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분이 성령입니다. 바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우리에게 공감하는 위로자 성령님입니다. 회개를 통해 무지의 너울을 치워주심으로 괴물들을 무력하게 하는 성령의 은총입니다.
“주님께 돌아서기만 하면 그 너울은 치워집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점차 성령의 성화은총으로 주님을 닮아가면서 잠재한 괴물들이 길들여지는 것이요, 마성魔性이나 악성惡性도 정화되고 성화되는 것이니 바로 성령의 은총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바로 이의 모범입니다. 화해의 달인이요 순수와 겸손, 자비와 지혜의 모범입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이 참 통쾌합니다. 그대로 제 고백으로 삼고 싶습니다.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완전히 자기 안의 괴물들을 무력하게 한, 괴물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주님의 종, 모든 이들의 종이 된 화해의 달인, 자기 절제의 달인 바오로입니다. 새삼 우리의 영성은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종과 섬김의 영성임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은총의 빛이 우리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며 괴물들을 길들여 순종하게 하며 자발적 기쁨으로 종과 섬김의 영성을 살게 합니다. 바로 여기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날마다의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자비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시편85,11-1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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