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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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6-15 | 조회수42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마태 5,20ㄴ-26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인도에서 ‘2페니’ 우리 돈으로 20원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아침에 출근해서 바로 차를 한 잔 마시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때 필요한 돈이 2페니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2페니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를 의심했는데, 아내는 왜 자신을 도둑으로 모느냐며 크게 화를 냈고 이에 남편도 맞받아쳤습니다. 그 문제만으로 싸움을 끝냈으면 좋았겠지만, 과거의 케케묵은 일들을 다 끄집어내고 심지어 상대의 집안까지 들먹이며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그러다 결국,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0원 때문에’ 살인사건이 일어난 셈이지요. 커다란 댐도 작은 구멍 하나로 무너집니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화를 참았다면 그런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살인해서는 안된다”는 율법을 글자 그대로 지키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그 율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살인만 안하면 된다’가 됩니다.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만 않는다면 그에게 화를 내고 모욕하며 때리는 행동들은 해도 괜찮다는 식이지요. 하지만 싸움이라는게, 폭력이라는게 정확한 한도를 정해놓고 “딱 거기까지만” 할 수 있던가요? 극심한 분노에 사로잡혀 흥분하면 말 그대로 정신줄을 놓아버립니다. 그리고 스스로도 감당못할 과한 폭력들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내지요. 그러다 뒤늦게 정신이 돌아오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린 상대방의 모습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상황이 거기까지 가면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내가 저지른 죗값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겠지요.
그렇기에 예수님은 십계명을 어기지만 않으면 잘 사는 거라고 자신을 속이며 사는 우리에게, 계명을 어기지만 않으면 자동적으로 획득된다고 여기는 ‘기계적인 의로움’을 넘어서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은 계명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대로 막 살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계명 이상’을 살라는 뜻입니다. 법의 근본정신을 삶 속에서 철저히 실천하여 법을 어길 일을 절대 만들지 않는 이를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주님의 뜻과 계명의 근본정신을 삶 속에서 철저히 실천하여 그것을 어길 일을 절대 만들지 않는 ‘계명 없이도 살 사람’으로 변화되라는 촉구인 것이지요.
우리 인생은 ‘심판’이라는 법정을 향해 가는 과정입니다. 회개한 사람에게는 그 길이 ‘상’을 받으러 가는 기쁨의 길입니다. 그러나 회개가 부족하거나 화해를 거부한 사람에게는 그 길이 심판과 처벌을 받으러 가는 고통과 두려움의 길입니다. 그런 점에서 ‘심판’은 하느님이 일방적으로 내리시는게 아니라, 내가 삶으로 선택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대 앞에 서면 처분을 바꿀 기회가 더 이상 없으니, 회개와 화해는 바로 ‘지금’ 해야합니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은 우리가 보속을 완전히 마쳐야만 연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연옥에서 수천, 수만배로 힘들고 괴로운 정화의 과정을 거치고 싶지 않다면, ‘이만큼 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나태해지지 말고, 적극적이고 꾸준한 사랑의 실천으로 내 잘못을 보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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