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1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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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6-18 | 조회수35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023년 06월 18일 일요일 [연중 제11주일] 오늘의 묵상 (정천 사도 요한 신부) 하느님의 구원은 우리가 수고한 대가로 얻는 것일까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노력하고 애쓴 일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당신 나라에 참여할 권한을 주신다고 우리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나약하던 시절, 곧 죄인이었을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죄인은 하느님 앞에서 전혀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불경한 자를 위하여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서도 착한 사람을 위하여서도 선뜻 내놓기 힘든 그 귀한 목숨을, 아무런 공로도 없는 죄인을 위하여 내놓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랑’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이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연민과 동정은 복음서 곳곳에서 당신의 구원 활동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합니다. 그분께서는 가엾은 마음에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마태 14,14 참조), 더 많은 가르침을 주려 하시고(마르 6,34 참조), 그들의 배고픔까지 걱정하시어 빵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이십니다(마태 15,32 참조). 여기에는 혜택을 입게 된 이들의 어떠한 공로도 선행되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닮은 아드님의 연민과 사랑이 그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뿐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여기서 ‘거저’로 옮긴 그리스 말 ‘도레안’은 선물을 뜻하는 ‘도레아’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는 보상이 아닌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이든 그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당신 아들을 우리에게 내주셨으며, 그분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거저 받았다면 거저 줄 줄도 알아야 하고, 무상으로 받은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도 무상으로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이웃에게 보답이나 대가를 기대하는 선행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정천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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