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마태5,38-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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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6-19 | 조회수29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복음(마태5,38-4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 동태(同態)보복(報復)법(法)-☞ 동일한 방법으로 보복(報復)하는 것,
(레위24,19-20) 19 동족에게 상해를 입힌 사람은 자기가 한 대로 되받아야 한다. 20 골절은 골절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대로 자신도 상해를 입어야 한다. = 19절 동족(同族 아미트), 말씀을 가지고 교제하는 동족. 이웃에게 상해(카탄 뭄)를 입힌 사람은 ,<카타-넘겨, 뭄- 점, 흠, 더러움> 곧 말씀을 점, 흠으로 넘겨준 사람은 그대로 되받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점’은 날때부터 가지고 나온, 생전의 것, ‘흠, 더러움’은 태어난 후, 그 생전의 것으로 만들어낸 것을 말한다. 하느님은 그 점과 흠, 더러운 제물은 안 받으신다. 그러니까 사람(아담)으ㅟ 본능인 선악 구조에 의해, 후에 만들어 낸 것들을 하느님은 받지 안으신다는 것이다. 19절은 우리가 생각하는 ‘동태보복법이 원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심판에 관한 언급이다. 곧 깨끗한 것이 아닌, 더러운 것을 가진 자가 그 더러운 것을 이웃에게 넘겨주는 자들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하실까를 설명하는 말이다. 죄‘를 알게 하는 선악의 율법주의’로 넘겨주면 그대로,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눈은(아인)- 샘, 말씀을 뜻한다.
(묵시5,6) 6 나는 또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사이에,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어린양이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린양은 뿔이 일곱이고 *눈이 일곱이셨습니다. 그 일곱 *눈은 온 땅에 파견된 하느님의 일곱 영이십니다. = 일곱은 안식(安息 싸바스-일곱번 말하다)의 말씀이다. ‘눈에는 눈으로’-네가 한 말, 그대로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곧 점, 흠 있는 눈의 말을 하면, 더러운 그대로 점. 흠 없는 말을 하면, 깨끗한 그대로 해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보고, 듣고, 말한 대로 된다는 말씀이다. 선악의 말씀으로 보고, 말하면 심판으로, 하늘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으로 보고, 말하면, 하늘의 용서, 구원으로 갚아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잠언25,18-19) 18 이웃에게 해로운 거짓 증언(진리의 말이 아닌 것)을 하는 자는 방망이와 칼과 날카로운 화살과 같다. 19 환난을 당할 때(진리)에 배신자를 믿는 것은 부서지는 이요 비틀거리는 발과 같다.
(마태8,11-12)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12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율법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나,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율법(제사와 윤리)의 행위를 가치로 여기며, 진리의 말씀을 지키지(킵-마음에 간직)않는 그 율법 자들은 씹을 말씀(씨)이 없어 이빨끼리 부딪치게 되는, 그 이를 갈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 악인(惡人 포노레스)- 율법의 수고로 고통스러워 아파하는 자, 그 악인에게 맞서지 말고, 그가 너의 오른 뺨(오른-올바른), 곧 네가 간직한 오른 그 진리의 말을 치거든, 다른 뺨, ‘참 진리이신 십자가의 예수께로 돌려 대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 대신 맞으시고 살리시겠다는 것이다.
(이사50,6)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1베드2,21-25) 21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22 “그는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입에는 아무런 거짓도 없었다.” 23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25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푸람나우- 속았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 ‘돌아왔습니다.’- ‘에피 스트레퍼.’ 본문,‘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와 같은 단어다.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 속 옷, 아담(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고,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운 것으로 판단(判斷)해, 그 알몸을 가리려 스스로 만들어 입은 ‘무화과나무 잎’이다. (창세3,7) 아담의 그 행위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신의 알 몸, 곧 하느님의 창조 일을 부족한, 부끄러운 것으로 스스로 판단한 교만(驕慢)인 것이다. 그것이 율법주의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를 무화과나무 열매에 비유하신 것이다. ‘씨도, 열매도 아닌 것이 열매인 척’하는 위선(僞善), 교만(驕慢)을 뜻한다. (우리가 먹는 무화과는 열매가 아닌 꽃이다.) 곧 아담(사람)이 선악의 눈으로 보고, 따 먹고, 스스로의 수고(愁苦), 의(義)로 만든 옷은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는 속옷이다. 그래서 자신의 알몸을 부끄러운 것으로 판단하여 부끄러운(죄) 존재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는 아담에게, 그의 부끄러움(죄)을 하느님께서 덮어주신다.
(창세3,21) 21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 아담(사람)을 살리시려, 어린양을 죽이시고 남긴 가죽으로 만든 옷이다. 곧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우리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우리의 죄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벗어 놓으신 그분의 수의(囚衣), 아마포 옷이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는, 덮을 수 있는 겉옷, 가죽 옷이다.
(요한20,6-7)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 예수님의 수의(壽衣) 아마포를 입는 것이 의(義)이다.
(묵시19,8) 8 그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고운 아마포 옷을 입는 특권을 받았다.” 고운 아마포 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입니다. = 선교(宣敎)는, 이웃 사랑은, 이 아마포 옷을 진리의 옷, 겉옷을 주는 것이다. *진리(眞理)는 우리의 말로도, 율법으로도, 자연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이 속옷과 겉옷을 함께 주는 것이다. (로마1,20참조) 곧 선악과(善惡果)로 생명을 설명하고, 악으로 선을 설명하며, 죄로 의를 설명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시(啓示) 방법이다. 이 땅에는 의(義), 선(善)은 없고(마태19,17), 악(惡), 죄(罪)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 죄로 선, 의를 깨달았다면, 받았다면 왜 죄악(罪惡)이 나쁘냐? 하는 것이 사도 바오로의 논리(論理)다. 그래서 바오로가 ‘율법은 나쁜 것이다.’ 하다가 ‘율법은 죄를 알게 하는 좋은 것이다’.(로마7,7-13)_ 죄가 철저히 죄가 될 때,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늘의 용서, 생명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모든 것을 생명 하나로 갖는 것이 ‘모노게네스’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는 그 하나를 가질 수 없기에 ‘하나’를 가지신 하느님의 외아들(모노게네스)을 겉옷으로 입는 것이다. 그분 안으로 들어가 ‘하나를 갖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를 전해주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 천(밀리온)+ 하나(에이스) 이천(듀오-뛰엣, 짝), 곧 “율법을 갖은 이가 율법을 강요하거든 그 율법의 짝인 진리 하나를 주어라“ 하시는 것이다. 곧 사람이 스스로 판단하여 스스로 만들어 입은, 그 자기의(自己義)의 옷, 그 속옷을 요구하거든, 짝인 ‘그리스도의 의(義)의 겉옷,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어 살리라’는 말씀이다.(로마3,20-24참조)
(이사34,16) 16 주님의 책에서 찾아 읽어 보아라. 이것들 가운데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제짝이 없는 것이 없으니 그분께서 친히 명령하시고 그분의 영이 그것들을 모으셨기 때문이다.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 ‘자신의 알몸인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이 입혀주신다’. 그것이 신앙생활(信仰生活)의 핵심(核心)이다. 지옥(地獄)은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몰라서 간다. 그러니 ‘생명, 구원의 말씀을 달라는 이’를 물리치면 안 된다.
☨우리의 영원한 보호자이시며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천주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저희 모두가 그리스도의 겉옷, 말씀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말씀)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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