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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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6-19 | 조회수27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마태 5,38-42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말은 기원전 1700년경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동태 복수법’(lex taleonis)의 내용입니다. 그것이 유대인의 사법체계에도 영향을 미쳐 율법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 예로 탈출 21,23-25을 보면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하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그런 율법이 생긴 것은 인간이 자신의 지체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상대방에게 악한 행실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피해받은 것 이상으로 복수를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면 점점 더 심해지는 복수의 굴레 안에 갇혀 모두가 멸망에 이르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거라 기대한 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은 그 율법 규정의 본 뜻을 잊어버리고, 이를 사적인 복수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아 악용하는 폐단이 발생했기에, 예수님은 부작용이 심해진 과거의 율법을 보다 고차원적인 사랑의 계명으로 대체하고자 하신 겁니다.
그 핵심은 ‘악인에게 맞서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맞서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의 원뜻은 ‘상대방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일히 맞대응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곧 악인이 그렇게 하듯 거짓과 권모술수로, 음모와 모함으로, 막말과 폭력으로 맞대응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사람의 마음은 스펀지와 같아서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 쉽게 물드는 법입니다. 특히 ‘못된 짓은 금방 배운다’고 선행보다 악행에 더 쉽게, 더 진하게 물들어버려 그 물을 빼기가 참으로 어렵지요. 어떻게든 다시 깨끗하게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나 뜻대로 잘 안되고, 그러다보면 더러워진 신발로 시궁창을 막 밟고 다니듯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죄로 가득찬 웅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종착지는 멸망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 들지 말고 하느님의 방식인 사랑과 자비로 맞서 이겨내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복수심과 분노에 사로잡혀 감당못할 일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이라는 가시가 내 마음 깊은 곳에 박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내 마음이 주눅들지 않고 그분께서 주시는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들을 마음껏 누리려면 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상대방이 별 뜻 없이 내뱉은 말에, 무의식적으로 한 의미없는 행동에 ‘욱’하는 마음으로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똑같이 맞대응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혹여 그가 내 마음에 돌을 던지더라도 나도 똑같이 돌을 던지려고 들지 말아야겠습니다. 그 사람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느라 아무 것도 못하는 불행한 내가 되지 말고,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 안에서 내 뜻대로 할 수 있으며 또 해야할 ‘사랑의 실천’에만 집중하여 내 행복을 나 스스로 지키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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