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느님 중심의 삶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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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6-21 | 조회수512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하느님 중심의 삶 -무욕의 맑고 향기로운 섬김의 삶-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요즘 은은하고 그윽한 자귀나무꽃 향기가 한창입니다. 대추꽃 향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꽃보다 향기맡고 찾아내는 꽃입니다. 멀리까지 그 향기가 미칩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피어나는 자귀나무꽃말은 ‘가슴 두근 거림’, ‘환희’로 며칠전 써놓은 시가 생각납니다.
“자귀나무꽃 향기맡고 찾아내는 꽃
한참가다 향기맡고 뒤돌아 보는 꽃 자귀나무꽃
존재의 향기 생명의 향기 사랑의 향기 겸손의 향기
당신은 이런 분이시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말씀 묵상중 떠오른 시가 참 반가웠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무욕의 맑고 향기로운 사람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꽃마다 향기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한결같이 하느님 중심의 무욕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자귀나무꽃처럼 존재의 향기, 생명의 향기, 사랑의 향기, 겸손의 향기를 발산합니다. 은은하고 그윽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바로 오늘 기념하는, 꽃다운 23세 나이에 애덕활동중 병사病死한 예수회 신학생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가 그러합니다. 1585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신학공부에 전념하던 차, 4년째 되던 해 1590년 로마 전역에 페스트가 퍼졌고, 헌신적으로 병자들을 간호하다 이듬해 3월초 자신도 페스트에 전염되어 같은 해 6월21일 23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합니다.
-성 알로이시오는 신중하고 분별력있게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수도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실천했습니다.
그의 시성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어 1605년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교황 베네딕도 13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됩니다. 다음 임종 얼마전 어머니께 드린 편지도 얼마나 하느님 중심의 철저한 효심깊은 삶이었는지 감동적이라 그 일부만 인용합니다.
“존경하올 어머니, 성령의 은총과 끊임없는 위로를 누리시길 빕니다. 어머니이 편지가 제 손에 닿았을 때 저는 아직도 산 이들의 땅인 이 세상에 있었습니다. 이제 심혈을 기울여 산 이들의 나라에서 영원하신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천국을 갈망해야 합니다. 저로써는 벌써 그곳에 가 있고 싶었고 이미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줄로 진정코 생각했습니다.
존경하올 어머니, 어머니와 우리 온 가족이 제 죽음을 하느님의 기쁜 선물로 생각해 주십사고 간절히 희망하면서 이 모든 말씀을 드립니다. 제 희망의 성취인 그 항구를 향해 바다를 건너가는 동안 어머니께서 저를 친히 축복하시어 보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들로서 어머니께 바쳐야 하는 존경과 사랑을 더 확실히 보여 드릴 방도가 없기에, 어머니께 기꺼이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놀랍습니다. 20대 초반에 이런 성덕에 도달해 있다니 성덕은 나이에 무관함을 느낍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하느님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의 이기적 삶을 산다면 성덕은 요원할 뿐이겠습니다.
어제의 깨달음의 은총과 더불어 물리치료를 받게 된 감사한 사실도 나누고 싶습니다. 나름대로 주님의 전사로서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데 수행생활에 허점이 있었던 듯 81.5kg 과체중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하느님 중심의 수행생활에 소홀했음이 분명합니다. 34세 수도원 입회시 62kg 이었는데 몇년후 68kg, 그리고 평균 74kg을 유지하던중 60대 중반을 넘어 80kg을 넘게 된 것입니다. 예전 초등학교 교편시절이나 서품때 사진은 지금과는 판이합니다.
법정 스님의 수행자는 출가시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을 때는 늘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만, 어제 뜻밖에 수도원 정원에서 봉사하는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한결같은 저보다 2세 연상의 세례자 요한 형제가 제가 대접한 배즙을 계기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약 보름간 체중감량을 위한 집중적 물리치료를 해주겠다 하여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원장수사에게 알렸더니 다음과 같은 짧은 답신도 받았습니다.
“최고입니다. 하느님 뜻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무욕의 삶이 참으로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맑고 향기롭습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이 결국은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하기 위함입니다. 바로 오늘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통적인 수행인 자선과 기도, 단식을 통해 하느님 중심의 수행의 진수眞髓를 보여줍니다. 자기 중심의 수행과 하느님 중심의 수행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1.“네가 자선을 베풀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올바른 자선에 대한 구체적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불가의 성철 스님이 극찬했던 내용입니다. 인색함보다 추한 것은 없습니다. 인생 노년에 노욕에 인색함까지 더한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숨겨진 자선의 선행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 신도들에게 이런 자선의 실천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내주니, 그의 의로움이 영원히 존속하리라.’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가 영적 현실에도 그대로 통하니 바로 자선의 수행을 통해서입니다. 날로 내외적으로 부유해지는 하느님 중심의 자선의 삶입니다.
2.“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 들이 받을 상을 이미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3.“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자기 중심과 하느님 중심의 수행이 얼마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지요! 침통함, 심각함, 우울함은 결코 영성의 표지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감쪽같이 자연스럽게 숨겨진 수행이 제일입니다.
자기 중심의 삶의 특징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무지하고, 외적이고, 육적이고, 부수적이고, 얕고, 닫혀있고, 드러나 있고, 허영, 교만으로 요약됩니다. 표리부동, 외화내빈의 삶이요, 주객전도, 본말전도의 무지에 눈먼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의 삶입니다. 결코 무지와 허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코 악순환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우상에, 이기적 가아假我에 노예된 삶입니다. 아, 이건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잊으니 저절로 나도 잊습니다. 완전히 뿌리없이 표류하는 좀비같은 유령같은 삶입니다.
반면 하느님 중심의 삶은 참사람이, 성인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지혜롭고, 내적이고, 영적이고, 본질적이고, 깊고, 하느님과 이웃과 나에 활짝 열려있고, 숨겨져 있고, 진실, 겸손으로 특징지어 집니다. 말그대로 무욕의 맑고 향기로운 삶이요 아름답고 매력적인 삶에 존재의 향기, 생명의 향기, 사랑의 향기, 겸손의 향기를 발산하니 그대로 그리스도의 향기요 천리향, 만리향같은 존재들입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신비가요 관상가요 영성가요 각자覺者요 현인이요 내적 자유에 내적 부요의 참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여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를 사는 이들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부단한 수행과 더불어 마음의 순수요 자유로움입니다. 그러나 자유는 최종 목적이 아니라 사랑의 섬김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사랑의 섬김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참 자유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영적 삶은 은총이자 선택이자 훈련이자 습관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하느님 중심의 삶을 선택하여 이에 따라 자선, 기도, 단식은 물론 모든 수행의 부단한 자발적 훈련을 습관화하시기 바랍니다. 날로 주님을 닮아 참나의 실현이 이뤄질 것이며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하느님 내 주시여, 이 마음 다하여 감사하리이다. 영원토록 당신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시편86,1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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