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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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6-21 | 조회수36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의로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다인들이 그 의로움을 얻기 위해 행하는 세 가지 선행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첫 번째 선행은 ‘자선’입니다. 유대교 전통 안에서 가난한 사람을 특별하게 돌보는 ‘자선’은, 매 주일 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금전과 물품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이 때 금전과 물품이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배려했습니다. 유다인들은 그렇게 공동으로든, 개별적으로든 자선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두 번째 선행은 ‘기도’입니다. 구약의 시편 뿐만 아니라 후대에 저술된 유대교 문헌들 역시 기도를 매우 진지하게 그리고 전심전력을 다해 실천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계속 그리고 영원히 찬미함으로써 의로워진다고 여긴 것입니다. 세 번째 선행은 ‘단식’입니다. 유대교 전통에서 '단식'은 속죄의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공식적으로 규정된 단식 혹은 개인적인 단식을 실천하면, 그 모습을 보신 하느님께서는 유다인들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진노를 푸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불행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 가지 선행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이 선행을 실천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올바른 자세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과시하거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선행을 드러나게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만 아시도록 조용히 실천하는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특히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위선자들은 선한 행동을 할 때에도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해서, 나의 선함, 나의 의로움, 나의 신앙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하는데, 바로 이런 자세 때문에 그들이 아무리 많은 선행을 실천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아무런 의미나 효과가 없는 ‘헛수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어떤 일을 하든지 하느님을 위해서 하면,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켜보시며 그에 상응하는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선하신 하느님을 닮고 싶어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나 역시 완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선하심, 하느님의 완전하심은 연예인들이 성대모사하는 것처럼 겉으로 어설프게 따라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내 마음 안에 계셔야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말과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향기가 배어 나옵니다. 이 미사에 함께 하시는 분들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면서 각자의 신앙을 차분하게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나의 신앙이 마음 속에 하느님을 품고 있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그런 척’하는 위선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하고 고민하며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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