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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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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26 조회수501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마태 7,1-5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남을 심판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올바르지 않다고 여겨지고, 나라면 저 사람보다 더 잘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더라도, 결국엔 그도 나도 다 똑같이 부족한 인간일 뿐인데 내가 뭐라고 그를 ‘심판’씩이나 하겠나 싶습니다. 우리가 아는 ‘심판’이란 어떤 사람의 잘잘못을 가려 결정을 내리는 일인데, 그 심판을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 그가 어떤 벌이나 조치를 받게될 지 처분이 달라지는데, 나한테 그런 권한이 있기는 한건지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다보니 ‘남을 심판하지 마라’는 말씀이 나와 별 상관 없는 ‘남 얘기’처럼 들리는 겁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심판하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의 정확한 뜻은 ‘판단하다’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우리는 살면서 정말 수도 없이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판단을 잘못해서 그 사람을 오해하고 피해와 상처를 입히는 일도 부지기수지요. 우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첫번째 이유는 그가 지닌 장점과 단점, 그가 처한 입장이나 상황을 충분히 알아보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 때문에 그의 단점을 위주로 보든, 그를 내 사람으로 소유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의 장점을 위주로 보든 그의 ‘반쪽’만 왜곡해서 보게된다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정도는 오히려 양반입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오판’은 ‘그’라는 존재 전체를 선 혹은 악이라는 이분법 안에서 어느 한쪽으로 규정지으려고 할 때 발생하지요. 보통 자기 자신이 다른 이보다 윤리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사람을 알아보는 영적인 안목이 남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자주 저지릅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 것처럼, 부족함과 약함 때문에 일시적으로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을 뿐인 약한 사람을 ‘악인’으로 낙인찍고 단죄하려고 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남을 절대로 심판하지 마라고 하십니다.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평가하고 싶은 못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그의 눈에 박힌 ‘티’를 찾아내려고 혈안이 된 나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로 돌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내 눈에 ‘들보’가 박혀있는 충격적인 현실을 발견하게 되고, 그가 저지른 티끌만큼 작은 잘못들을 일일히 지적하고 비난하는 것보다, 내가 저지른 들보만큼 큰 잘못들을 바로잡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자기성찰’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먼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참된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이 지닌 참된 모습을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안목을 지니게 된 사람은 남이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들을 지적질하기보다, 같이 마음 아파하고 그가 상황을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며,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그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충분히 숙고한 뒤 겸손과 사랑으로 그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 줍니다. 바로 그 모습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참된 ‘형제’의 모습이지요.

 

그러니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찾는 일보다, 내 눈에 박힌 들보를 빼내는 일에 더 집중하면 좋겠습니다. 그 방법은 ‘호의’로, 즉 그를 위하는 마음, 그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빌어주는 마음, 진심으로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자꾸만 누군가를 심판하거나 남의 뒷담화를 하는 악습을 바로잡고 싶다면, 심판이나 뒷담화를 ‘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을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사람에게 자비와 선을 베푸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야고 2,13)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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