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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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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27 조회수563 추천수6 반대(0) 신고

생명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

-은총, 분별의 지혜, 황금률-

 

 

 

"인간이 무엇이기, 주여 마음 쓰시옵고

 그 종락 무엇이기 생각해 주시나이까(시편144,3)

 

어찌보면 하루하루가 좁은 문의 연속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자리, 바로 거기가 생명의 좁은 문이자 구원의 좁은 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 좌우명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는 생명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해온 삶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통과해 왔고 통과하고 있고 통과해야할 생명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입니다. 비상한 좁은 문이 아니라 평범한 공동생활 자체가 구원의 좁은 문일수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통과해야할 좁은 문이자, 첩첩산중 넘어야 할 산입니다. 하루하루 좁은 문을 통과하듯, 산을 넘듯 써온 강론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통과해야 할 좁은 문이요 마지막 가장 어려운 생명과 구원의 좁은 문이 죽음입니다. 주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강력히 권고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누구나의 광야 인생 여정, 하루하루 통과해 나가야할 좁은 문의 연속입니다. 끝까지 잘 통과하면 성인이지만, 도중에 넓은 문의 유혹에 빠져 인생 좌초하여 괴물로, 폐인으로 끝나는 인생은 얼마나 많은지요! 새삼 인생은 선물이자 평생 좁은 문들 통과의 과제임을 깨닫습니다. 하루하루 좁은 문을 힘껏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하고자 날마다의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비교할 수 없는 각각 고유의 좁은 문입니다. 한 공동체에 몸담고 살아도 각자 통과해야 할 구원의 좁은 문은 다 다릅니다. 사람 숫자만큼 좁은 문의 수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 힘들어 무척이나 외롭고 고독하기도 합니다. 좁은 문에 좌절하고 절망하여 목숨을 끊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굳이 구원의 좁은문 찾아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주어진 자리가 생명의 좁은 문, 구원의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행복은 생명의 구원은 바로 지금 여기 있습니다. 눈만 열리면 언제 어디나 구원의 좁은 문, 구원의 꽃자리입니다.

 

사실 밖에서 볼 때, 몰라서 좁은 문이지 살다 보면 내적으로 점차 넓어지는 생명의 넓은 문일 수 있습니다. 연륜의 수도자들에겐 그렇습니다. 예전 50년전 초등학교 교사시절 선배 여교사의 충고가 생각납니다.

 

“이선생,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좀 쉽게 살아.”

“저에겐 이게 쉽게 사는 것인데요.”

 

힘껏 정도를 따라 사는 것이 사실 저에겐 힘들어도 쉽게 사는 일이었습니다. 그후 20여년후 여기서 뜻밖에 그 선생님을 만났을 때, 참 계면쩍어 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동안 영세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됐던 것입니다. 수도생활도 밖에서 볼 때 좁은 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의 수도생활도 사랑하면 점차 내적으로 넓어지는 생명과 구원의 좁은 문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도, 공부도, 겸손도, 가난도. 침묵도, 순종도, 정결도 하느님을 사랑하듯 그렇게 모든 수행을 사랑하여 온갖 자발적 노력을 다할 때 주님의 은총과 더불어 날로 내적으로 넓어지는 생명과 구원의 좁은 문이 됩니다. 언젠가 써놨던 고백시가 생각납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자리 찾지 말자

어디든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그 어디든 뿌리내려

자리 잡아

하늘 가득 담아 

하늘 사랑 활짝 꽃피어 내면

바로 거기가 구원의 꽃자리이다.”

 

행복기도중 한 대목도 이런 진리를 고백합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우리의 사부 성 베네딕도도 수도생활의 좁은 문이 날로 감미로운 생명과 구원의 문으로 변모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 주며 성규 머리말 끝에서 우리를 격려하며 용기를 줍니다.

 

“좁게 시작하기 시작하기 마련인 구원의 길에서 도피하지 말아라. 그러면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들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니, 주의 가르침에서 결코 떠나지 말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그분의 교훈을 항구히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인내로써 한몫 끼어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성규 머리48-50)

 

오늘 복음은 세 단절어로 되어 있는데 좁은 문 통과가 그 하나가 둘은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과 황금률입니다. 참 공교롭게도 생명과 구원의 좁은 문 통과에 큰 도움을 주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분별의 지혜요 겸손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참으로 분별의 지혜를 지닌 이들은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않고, 우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기와 질투, 분노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 지도 모른다.”

 

좋은 일을 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차별이나 무시가 아니라 분별의 지혜입니다. 아무리 귀하고 좋은 가르침도 때와 사람을 봐야 합니다. 이런 분별의 지혜가 좁은문 통과에 결정적 도움이 됨을 봅니다. 얼마나 많은 선의와 정의의 의인들이 개혁에 좌초하여 억울한 박해와 죽음을 당했는지요. 어제 도올 김용옥의 주역 강의중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지금은 난세다. 악랄한 선인들이 필요하다.”

 

하나는 황금률입니다.

동서양 공통의 지혜로운 잠언입니다. 사랑의 이중계명과 황금률을 잣대로 하면 좁은 문 통과도 수월할 수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해주는 것이요,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하지 않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랑, 공감과 배려, 존중의 사랑입니다. 이런 황금률의 진리대로의 삶이 좁은문 통과에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바로 이런 황금률 실천의 모범이 제1독서 창세기의 아브람입니다. 어제 오늘 아브람의 여정을 보면 좁은문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좋은 믿음에 지혜로웠고 한결같았습니다. 주님의 제단을 쌓음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했습니다. 

 

오늘도 아브람은 사심이나 욕심없는 관대한 마음으로 롯에게 선택권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롯은 자기가 택한 참 좋은 요르단 땅에 멸망할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음을 꿈에도 생각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어 하느님께 큰 축복을 받는 계기가 됩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삶에 충실한 자들의 좁은문 통과에는 늘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함을 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생명과 구원의 좁은문 통과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인간이란 하나의 숨결같은 것,

 지나가는 그림자, 그의 날들이외다."(시편144,4).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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