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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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6-27 | 조회수415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마태 7,6.12-1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오늘의 제1독서를 보면 아브람과 롯은 재산이 너무 많아 함께 살기가 어려워져서 서로 갈라져 따로 살기로 합니다. 이 때 아브람이 조카인 롯에게 정착할 곳을 먼저 선택할 권리를 양보하지요.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세 13,9) 땅을 먼저 선택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기득권’을 의미합니다. 비옥하고 물도 넉넉한 좋은 땅을 선점하여 내 것으로 만든다면 그만큼 더 많은 소출을 거두어 더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그런 엄청난 기득권을 나이도 한참 어린 조카에게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땅과 많은 후손을 보장하신 하느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대한 굳은 믿음이 그의 마음을 더 관대하고 자애롭게 만들어준 겁니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먼저 남에게 해주는’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아브람으로부터 우선 선택할 권리를 양보받은 롯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이나 이집트와도 같아’ 보이는 요르단 쪽의 땅을 선택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외적인 풍요로움이 어떤 단점과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는 미처 생각해볼 틈도 없이, 더 풍요로운 곳에서 더 편안한 삶을 누리고 싶다는 육신의 욕망을 따라 ‘넓은 문’, ‘널찍한 길’을 택한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소돔 땅에 살던 수많은 죄인들에게 닥칠 멸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위기에 처하게 되지요.
반면 아브람은 롯이 고른 곳의 반대편으로 나아갑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선택의 권한을 양보했기에, 그는 곧 하느님께서 선택해주신 땅으로 나아간 셈입니다. 그런 그의 믿음과 순명을 보신 하느님은 그에게 "네가 보는 땅을 모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주겠다."는 어마어마한 축복을 내리십니다. 직접 파서 가꾼 땅도 아니고, 죽기 살기로 싸워서 차지한 땅도 아닌데, 아브람의 시야에 들어온 그 드넓은 땅을 다 주시겠다니! 당신 뜻에 충실한 이에게 충만한 보상으로 되갚으시는 신실하신 하느님의 너른 마음 씀씀이가 그저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그런 하느님이라면, 그런 그분의 뜻이라면 그 뜻을 따르는 길이 비좁고 험할지라도 든든한 믿음으로 기꺼이 따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따라야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한다고 생각없이 따라가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걸,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남들과는 뭐가 다른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는걸 너무나 잘 알고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우리들입니다. 그런 원칙은 구원의 여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게 이롭다고, 그렇게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맹목적으로 따라가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즉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살아야 영원하고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지요.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좁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성공의 문은 정해진 몇 사람만 통과할 수 있지만, 구원의 문은 우리가 독하게 마음먹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누구든지 통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내 모든 걸 하느님께 ‘올인’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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