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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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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02 조회수570 추천수4 반대(0) 신고

230702. 연중 제13주일.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8)

 
오늘은 연중 제13 주일입니다. 7월의 첫 주일, 우리는 한 해의 중간에 이르러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마음을 새겨야 할 때입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하느님께서 파견한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축복과 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예언자 엘리사를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받아들여 숙소를 제공하고 대접한 수넴 여인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축복과 자비를 들려줍니다.

<제2독서>에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이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혔으니, 그분과 함께 살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에서는 특히, 예수님께서 파견한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들에게는 상이 베풀어지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0,40)
 
이 말씀은 당신께서 제자들을 단순히 당신의 대리인을 파견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한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 ‘당신의 이름으로’ 파견된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당신 안에는 아버지께서 계셔서 당신께서 하시는 일은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과 같이, 당신이 파견한 제자들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당신의 제자를 제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제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핍박을 당하면서도 섬기는 “작은이들”인 파견 받은 이들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에게는 “상”이 베풀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저희 삶을 돌아보게 하며, 새롭게 살기를 요청합니다. 곧 나는 파견 받은 제자로서 작은이로 살아가고 있는지, 곧 섬기는 이가 아니라 섬김 받기를 좋아하지는 않는지, 또 핍박당하고 거부되는 것을 못 견뎌하고, 오히려 상대를 윽박지르고 짓누르지는 않는지,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받아들여 대접해주는 신자들의 선의를 마치 정당한 권리인 양 당연히 여기거나 또는 기대하고 즐기고 있지는 않는지, 진정 나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인지를 드려다 보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또 하나의 주제는 당신의 제자 혹은 파견 받은 이가 지녀야 할 태도와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로서 합당하지 못한 태도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부모나 자녀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8)
 
부모나 자녀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라”는 말씀은 가족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의 자연적 인간적인 사랑(φιλεω)보다 신적인 사랑(αγαπαω)을 앞세우라는 말씀입니다. 곧 예수님의 제자는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앞세워 ‘먼저’ 사랑하는 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으로 그들이 겪게 될 시련과 치욕을 지는 일입니다. 곧 당시의 십자가는 죄수 중에도 노예죄수나 반란죄를 지은 이의 처형도구였듯이, 대단히 불명예스럽고 치욕적인 죽음까지도 지고 따르는 일입니다. 자신을 훼손하고 손해 보면서 따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로서 합당한 태도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는 이 땅에서의 삶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 안에서의 생명의 상실은 오히려 더 귀한 생명의 얻음이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반대로,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가치를 위해 영적이고 영원한 가치를 잃는다면, 결국 자기의 영혼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며,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제시해줍니다. 곧 나는 대체, 무엇을 앞세워 살아가고 있는지, 대체 무엇을 더 사랑하는지, 하느님인지 나 자신인지, 또 제 십자가는 기꺼이 지는지 아니면 피하고 있는지, 누구를 따르는지 내 자신인지 주님인지, 또 누구의 뜻을 따르고 실현하고자 하는지, 나의 뜻인지 주님의 뜻인지, 또 내 목숨을 내어놓는지 아니면 나 자신의 목숨에 연연하고 상처받지 않고 손해 보지 않으려 온갖 안전과 보호 장치를 꾸미고 있는지, 진정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있고, 따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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