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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요한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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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03 조회수475 추천수2 반대(0) 신고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요한 20,24-29)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 토마스 이름 앞에는 쌍둥이라는 수식어가 꼭 붙는다. 쌍둥이- 두 민족(창세기25,24) 두 마음의 모습을 보라는 것이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 동료들의 말을 왜 믿지 못했을까? 샘이 나서? 제자로써 자신만 못 뵈었다는 속상함 때문에?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른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믿지 못한 것은 아닐까?

예전에 불교에서 개종한 어느 형제(자매)가 ‘자신의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지시고 죽으셔서 용서를 주신다. 하시는데 그것 왜 안믿어?’ 하면서 ‘불교에서는 그 죄를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데 그 것이 안되거든’~~

그때 그 형제(자매)보다 성당을 더 열심히 다니면서도 그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지 못했던 나는 솔직히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저게 무슨 소리지? 분명 틀리 소린 아닌데’ 하면서~~

복음 말씀을 선악의 도덕과 윤리 그 두 법, 두 마음으로 보아~, 성사, 전례 등 종교행위를 열심히 하면서도 죄에서의 자유가 없어 고민하고 힘들어 하던 때에 그 같은 예수님의 용서의 말을 들으니 한 대 얻어맞는 충격으로 다가 왔었습니다. 정말 부활하신 주님(말씀)을 만났다면 죄의식,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히브10,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

=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도 여전히 숨어있는 그 제자들을 보며 미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군가 주님의 말씀을 도덕과 윤리로 알려준다면 법으로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진리로 못 만난 자입니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도 따르고 자신의 뜻을 이루려는 자신들의 욕망을 위한 그 두마음의 신앙을 살았기에 십자가의 대속이 주는 용서, 쉼, 안식. 그 예수님의 평화를 몰라 두려워 숨어있는 그 제자들에게 계속 당신의 평화를 주십니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 자신이 동료 제자들에게 한 말을 예수님이 똑같이 하시네요, 토마스 얼마나 놀랬을까?

이 부분에서 잠시 생각해 보자구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잠깐 나타나셨다가 어디 딴데 가셨다가 다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늘 제자들과 함께 동행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토마스와 늘 동행하셨기에 다 아시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한13,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죽으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하심, 그 사랑은 완료, 완성까지의 사랑이신 것입니다.

끝까지 사랑하심이~ 토마스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지 않고도 고백을 할 수 있게 하신 것이지요. 예수님(스승)이 정말 부활하셨군요?가 아닌, 큐리오스-나의 주인, 믿음의 주님으로~~

 

(히브12,2)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자신들의 뜻, 욕망을 채워 줄 능력의 예수님(스승)이 아닌 자신의 모든 것, 영과 육 그 두마음의 주인이신 주님, 성자 하느님이심의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베드로 처럼이요~~

 

(마태16,16-17)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 베드로의 살과 피, 그 자신이 아닌 하느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다는 것이지요.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토마스의 의심은 믿고 싶고, 알고 싶은 제자로서의 열정이었던 것입니다. 그 열정은 믿음의 눈으로 이끌어 줍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입니다.

반 컵의 물을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조금 남아 있음으로 보이는 것이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아직 반이나 남있네? 할 수 있듯이 토마스는 주님의 눈으로 주님을 보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관점으로 보지 않고 믿는 이가 복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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