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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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7-05 | 조회수774 | 추천수3 | 반대(0) |
예전에 성당에서 여름이면 학생들과 ‘신앙학교’을 갔습니다. 시설이 갖추어진 캠프장으로 가기도 했고, 산에서 텐트를 치면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다고 하였듯이 ‘신앙학교’를 열기위해서 교사들은 몇 달 동안 준비하였습니다. 당시 신학생이었던 저는 여름방학이면 교사들을 도와서 ‘신앙학교’에 함께 하였습니다. 신학생들은 ‘조’를 맡아서 학생들과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주로 물품 준비를 하거나, 전례 준비를 도왔습니다. 당시 학생들에게 가장 추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추적놀이’였습니다. 조원들이 정해진 ‘미션’을 수행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조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었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하였습니다. 추적놀이의 정점은 캄캄한 밤에 무서움을 참고 목적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중간에 교사들은 몇 가지 장치를 해 놓았습니다. 무서운 소리가 나기도하고, 분장한 귀신이 나오기도 하고, 무덤이 있기도 했습니다. 담력이 약한 아이들은 울기도 하지만 모두들 조장을 중심으로 ‘추적놀이’를 잘 마치게 됩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위해서 ‘옥수수, 수박’과 같은 간식을 마련하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추적놀이’의 시작은 ‘탄생’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태중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습니다.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통해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먹고, 자고, 놀면서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아기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좁고, 어두운 자궁을 지나야 합니다. 그래서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은 첫 호흡을 하면서 힘차게 울어 됩니다. 엄마와 연결되었던 탯줄은 잘라지고, 그 흔적은 아이의 배꼽으로 남게 됩니다. 이제부터 아이는 스스로 숨을 쉬어야 합니다. 들숨과 날숨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남을 수 없는 나약한 몸입니다. 부모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아이는 스스로 일어나고, 걷고, 말하게 됩니다. 인간은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서 가장 오랜 시간 ‘추적놀이’를 하면서 공동체에 적응하게 됩니다. 이런 추적놀이는 인류가 쌓아온 문화와 문명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저 또한 29년 동안 ‘추적놀이’를 통해서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웠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영원한 안식을 얻을 때까지 ‘추적놀이’는 계속될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추적놀이’를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고 싶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의도를 몰랐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미션’을 기꺼이 수행하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기뻐하셨습니다. 제물로 쓰신다던 이사악을 대신해서 어린 양을 제물로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주신 ‘미션’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느님께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마련한 ‘추적놀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로 물든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의인’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의인이 50명만 있어도, 아니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살려 주실는지 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청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의인이 10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살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추적놀이의 관건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하느님께서 거두심을 감사드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행동’입니다. 오늘 중풍병자의 이웃은 예수님께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의 행동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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