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08. 연중 제13주일 토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1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단식논쟁을 통해서, ‘새로운 때’가 도래했음을 선포하십니다. 곧 ‘신랑이 와 있는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마태 9,15)
이는 단식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지금은 단식할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새 시대’가 왔기 때문입니다. 곧 새로운 시대의 단식은 달라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구약의 단식과 신약의 단식은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실, 바리사이들과 요한의 제자들은 <레위기> 16장 29-31절에 따라, 구약의 속죄일을 지키기 위해 단식을 했습니다. 곧 잘못을 벗고 정결해지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단식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한 바리사이들은 월요일과 목요일, 1주일에 두 번씩 단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단식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 지금은 그 “때”가 아님을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아무도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신랑이라고 부르십니다. 사실, 세례자 요한도 예수님을 신랑이라고 부른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부를 얻는 이는 신랑입니다. 신랑의 벗이 곁에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를 들으면 크게 기뻐합니다.”(요한 3,29)
그리고 신랑인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낡은 옷에다가 깁을 수 없는 “새 천”이며, 낡은 가죽 부대에 담을 수 없는 “새 포도주”에 비유하십니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16-17)
이는 당신과 함께 ‘새 시대’가 도래 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제는 단식의 의미도 달라진 것입니다. 새로운 단식, 곧 구약의 속죄와 정결을 위한 단식이 아니라, 신랑이 떠나간 후에 있게 될 단식입니다.
이 말은 단식이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연결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이제부터 단식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것을 기억하며, 그 사랑에 감사드리며,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는 단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가 필요합니다. 새 부대는 ‘변화된 삶’을 의미합니다. 곧 새 포도주를 담을 ‘변화된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새로운 삶 안에 우리의 새로운 생명과 사랑을 채우는 일이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태 9,17)
주님!
제 마음이 당신의 부대이오니, 사랑의 술을 부으소서!
제 삶이 당신 사랑의 잔이오니, 술잔 가득 사랑을 채우소서.
취해, 기뻐 흥겨우리이다. 온통 젖어, 향기 품으오리이다.
만나는 이마다 축복과 기쁨, 생명과 진리 그득 담아 건네오리이다.
오늘, 저의 삶이 화들짝 달구어지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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