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4 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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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7-13 | 조회수821 | 추천수5 | 반대(0) |
부르클린 한인 공동체와 야외미사를 다녀왔습니다. 야외미사가 잘 진행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 그 중에 ‘날씨’도 큰 몫을 합니다. 일주일 전부터 일기예보를 보았는데 ‘비’ 소식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일기예보의 예측대신에 화창한 날씨를 주셨습니다. 야외미사에 온 교우들도 모두 환한 모습으로 미사가 있는 공원으로 모였습니다. 작년에도 화창한 날씨를 주셨는데 올해에도 하느님께서는 좋은 날씨를 주셨습니다. 날씨가 좋으면 50%는 이미 성공한 셈입니다. 미사를 마친 후 각 구역별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LA갈비와 삼겹살로 모두가 풍족히 먹고도 남았습니다. 각 구역마다 전을 부치고, 맛있는 밑반찬을 준비해 왔습니다. 저는 구역마다 돌아다니면서 준비한 음식을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을 청을 받아들여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혼인잔치는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저는 소주에 맥주를 섞어서 ‘소맥’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각 구역별로 신나는 노래잔치를 하였고, 야외미사의 꽃인 보물찾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밭에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교우들은 공원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면서 무척이나 기뻐하였습니다. 성당에서 마련한 기념품인 ‘수건과 우산’을 나눠드리고 야외미사는 내년을 기약하며 마무리되었습니다. 작년과 달리 이번 야외미사에는 10명이 넘는 청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마침 그날이 생일인 친구가 있었고, 지난번 종신부제서품 축하식에 함께 했던 청년들이 이번에는 생일축하를 한다며 모였습니다. 이제 막 결혼한 청년도 왔고, 결혼을 앞둔 청년도 왔습니다. 고백성사를 청한 청년들에게 고백성사를 주었습니다. 먼 바다로 갔던 연어들이 다시 태어난 강으로 오듯이 대학과 직장생활로 바빠서 성당에 오지 못했던 청년들이 이제 다시 복사를 하고, 한국학교에 다녔던 성당으로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로 청년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하였던 종신부제님이 있으니 청년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면 성당은 더욱 활기를 찾을 것 같습니다. 넓은 공원에 분명 보물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보물이 없다고 불평이 있었지만 열심히 찾는 사람들에게 보물은 있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야곱은 가족과 가축을 데리고 요셉이 있는 이집트로 출발하였습니다. 야곱과 그 가족들은 마치 이집트로 ‘야외미사’를 가는 것 같습니다. 사목위원들이 선발대로 가서 야외미사를 할 수 있도록 제대를 마련하고, 의자를 준비했던 것처럼 요셉은 선발대가 되어서 이집트에서 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야곱을 축복하였고,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복약 안내서’를 써주는 한의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의사는 색다른 복약 안내서를 작성했다고 합니다. 처방된 약이 어떻게 몸을 바꾸어 나갈 것인지, 앞으로 치료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몸이 달라지는 과정에서 어떤 증상이 나타날 것이며, 스스로 몸을 어떻게 관찰하면 좋을지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복약 안내서를 읽고 기뻐하는 환자들이 있어서, 변화된 몸을 스스로 느끼는 환자들이 있어서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치료는 그저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라는 한의사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채워진다고 해서 진정으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욕망을 다 채우기도 힘들지만, 그렇게 채워진 것들은 그것이 사라지게 되면 더욱 공허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화려한 언변과 지식으로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입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방에게 해 주려는 태도입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신앙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신앙은 고통 중에서도, 절망 중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아 갈 수 있는 이정표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견디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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