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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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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16 조회수509 추천수4 반대(0) 신고

230716. 연중 제15주일.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
 
 
연중 15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말씀이 있는 존재 이유’, 곧 ‘말씀이 왜 있는지’를 밝혀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루기 위해서 있습니다. 곧 실현(성취)되기 위해서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표현으로는 열매 맺기 위해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리는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제2독서>에서는 이러한 ‘말씀의 실현’을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며 기다립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열매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로마 8,23) 
 
<복음>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결론처럼 마지막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8-9)

분명, 나에게도 말씀의 씨앗이 뿌려졌을 터인데, 지금 나에는 몇 배의 열매가 맺혀 있는가? 사실, 내가 몇 배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질문해보게 됩니다. 이는 나는 어떤 땅인가라는 질문이라기보다 어는 땅을 얼마나 일구고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씨앗이 떨어질 때 좋은 땅 이었는가 보다도 씨앗이 뿌려지면, 그 땅은 그 씨앗으로 말미암아 좋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땅은 씨앗과 함께 일구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땅의 사람은 땅을 지배하지 않고, 뿌려진 씨앗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밭에서 일할 줄 알며 하늘을 쳐다보고, 함께 땅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땅을 윽박지르지 않고 갈라놓거나 파헤치지 않으며, 땅을 매만지며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씨앗을 품은 농심입니다. 곧 뿌려진 씨와 함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소명을 짊어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 안에 그분의 사랑, 그 씨앗이 뿌려졌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마태 13,10) 여쭈었고,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13,11)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하늘나라를 가르쳐 주셨고, 똑같이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그들이 하늘나라의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차별대우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받아들이는 자는 더 받아들여 넉넉하게 되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겨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태 13,13)
 
분명, 그들에게 먼저 보여주고 들려주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초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어둠이 초래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마태 13,15;이사 6,10)

사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셨지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분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인간의 논리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였을 것입니다. 이 문장을 주의 깊게 보면, 주어가 “그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고쳐주시기를 원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자신들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그들이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고침을 받게 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가 자신들의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를 <요한복음> 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5) 
 
오늘, 우리는 복음을 들으면서, 이처럼 ‘완고한 마음’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받아들인 제자들에게는 행복이 선언됩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이러한 사람이다.”(마태 13,23)

주님!
좋은 땅의 사람 되게 하소서.
좋은 땅일수록 뿌린 씨앗만이 아니라 뿌리지 않은 잡초도 잘 자라기에
시련을 끌어안고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열매를 맺는데 당연히 있기 마련인 죽음의 길에서 도망치지 않고,
어떤 처지에서도 방관자로 살지 않게 하소서. 

오늘도 기꺼이 죽어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의 사람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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