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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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7-19 | 조회수690 | 추천수7 | 반대(0) |
오랫동안 절에 다니던 할머니가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얘야 절에 있는 부처님은 풍채도 좋고 자비로운데 성당에 있는 예수님은 삐쩍 마르고 고통스럽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느낌을 들으면서 공감이 갔습니다. 부처님 상은 앉아 있기도 하고, 서 있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합니다. 대부분 자비로운 모습입니다. 예수님 상은 대부분 십자가에 매달려 있고, 피를 흘리는 모습입니다. 부처님은 고통에 대해 ‘성찰’하였습니다. 고통의 원인은 꺼질지 모르는 욕망과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참된 자아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삼독에 의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고통, 원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채우지 못하는 고통, 거짓된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고통은 ‘집착’에서 오기 때문에 그 집착을 버리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중국, 한국, 일본을 비롯하여 아시아로 전파되었는데 큰 박해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성찰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행복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온유한 사람,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부처님이 말한 고통과 예수님이 말한 고통은 드러나는 현상은 비슷하지만 그 원인은 달랐습니다. 부처님이 말한 고통은 그 원인이 ‘욕망’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는 고통은 그 원인이 ‘대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은 어리석은 것 같이 보였지만 그 길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부활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로마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도 100년 정도 박해를 받았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여러분은 모두 나에게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안식을 주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남에게 바라는 대로 여러분도 남에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을 자주해야 합니다. 험담을 하거나, 상처를 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고운 말을 하면 사랑의 꽃이 피기 마련입니다. 나쁜 말을 하면 원망의 꽃이 피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을 통해서 치유의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손을 높이 들어 하느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손을 내밀어 지친 친구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합니다. 손을 가슴에 대고 나의 허물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웃의 짐을 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은 우리를 하느님과 멀어지게도 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손입니다. 남을 때리는 것도 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손을 주신 것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함께 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 아픈 이, 외로운 이들의 곁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산으로 가셨습니다. 고난의 길을 기꺼이 가셨고,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가 따라갈 수 있다면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과 멀어진 많은 사람들은 그릇된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길, 재물의 길, 명예의 길은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사랑의 길, 희생의 길, 나눔의 길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안내 해 줄 것입니다. 신앙인들은 제2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누군가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가고 싶다는 뜻으로 ‘사명’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가톨릭 신앙인이다.’ 이 말에는 ‘믿음, 희망, 사랑’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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