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20. 연중 제15주일 목요일.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마태 11,28)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나그네가 바랑을 지고 다니듯, 바랑이 없는 거지도 끼니를 챙겨야 하는 ‘짐’을 져야 하듯, 오늘도 우리는 삶을 ‘짐’으로 지고 살아갑니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 있고, 수도자로서 스스로 짊어진 ‘짐’도 있습니다. 부모로서 져야 하는 ‘짐’이 있고, 자녀로서 져야 하는 ‘짐’이 있고, 가족으로서 함께 져야 하는 ‘짐’이 있습니다.
질병과 육신, 상처와 나약함, 분노와 원망을 ‘짐’으로 지고 가기도 합니다. 형제를 ‘짐’으로 지고 가고, 세상을 ‘짐’ 지고 가며, 자기 자신을 ‘짐’으로 지고 갑니다. 자신만이 짊어져야 하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짐’이 있고, 부당하게 떠맡겨지는 ‘짐’도 있고, 피하고 싶은 ‘짐’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짐’을 다른 이에게 떠맡기기도 하고, 다른 이의 ‘짐’을 떠맡기도 하며, 함께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는 탄생과 더불어 생명을 ‘짐’으로 짊어지고 살아가고, 살면서는 죽음을 ‘짐’으로 짊어지고 죽어갑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의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2코린 4,10). 그런데 나의 몸에서, 나의 짐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드러나고 있는가?
사실, 예수님께서도 ‘짐’을 지고 가셨습니다. 세상을 짊어지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아니, 그 ‘짐’을 지기 위해 오셨습니다. 바로 그 ‘짐’을 지고서야 가실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결코, 그 ‘짐’을 지지 않고는 가야할 그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길이요, 십자가 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진 ‘짐’은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길을 갈 수 있도록 를 도와주고 북돋아줍니다.
사실, 우리를 짓누르는 것은 ‘짐’이 아니라, 짐을 지지 않으려는 우리 자신일 뿐입니다. 오히려 ‘짐’으로 하여, 우리는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짐’이 우리를 짊어지고 가는 까닭입니다. 정녕 ‘짐’을 지고서야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까닭입니다. ‘짐’이 없이는 가지를 못하는 길을 가는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짐’은 우리를 북돋아주고 도와주는 은총입니다. 그 ‘짐’은 저를 구원으로 이끄는 ‘짐’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멍에"에 짐을 올려놓고 그리스도와 함께 짐을 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총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지고 갑니다. 우리가 은총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돕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지고 가십니다. 그리스도의 멍에에 짐을 올려놓으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몸소 우리의 ‘짐’마저 짊어지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그 멍에는 편하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30)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짊어진 짐에서 당신의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십자가를 사랑으로 지고서 제가 갈 길을 사랑으로 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워라.”(마태 11,29)
주님!
당신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위에 있지만 짓누르지 않는, 묶지만 옭아 메지 않는,
오히려 편하게 하는 사랑의 멍에를 메게 하소서.
함께 지며 나누는, 함께 가며 끌어주는 그 손을 놓치지 않게 하소서.
동행해 주고 길이 되어 주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 마음을 따라 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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