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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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7-21 | 조회수460 | 추천수2 | 반대(1) 신고 |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마태 12,1-8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함께 밀밭 사이를 지나가던 제자들이 가까이 있던 밀 이삭을 뜯어먹기 시작합니다. 하루 종일 예수님을 수행하며 수많은 군중들 틈에서 시달리느라 제대로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기에 배가 너무나 고팠던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을 안쓰럽게 쳐다보시던 예수님의 등 뒤에서 바리사이들의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제자들의 행동만 보았기에, 율법 규정을 어겼는가 어기지 않았는가 하는 결과만 보았기에, 잘못된 행동을 문제삼으며 단죄하려고 든 겁니다.
바리사이들이 보기에 밀이삭을 잘랐다는 것은 안식일에 추수를 하지 말라는 규정을 어긴 것이고, 그것을 손으로 비벼서 이삭에서 낟알을 떨궈낸 것은 타작하지 말라는 조항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입으로 후후 불어 껍질을 털어냈다면 키질을 하지 말라는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편지를 뜯는 일도, 불을 지피는 행위도 금지사항이었습니다. 닭이 안식일에 알을 낳았다면 그 알은 먹을 수 없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계명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그처럼 다양한 세부규정들을 만들었지만, 너무나 방대하고 세세한 그 규정들로 인해 율법의 근본정신과 의미가 가려져 버렸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방향성을 상실한 채, 오히려 사람을 구속하고 못살게구는 ‘올가미’이자 ‘걸림돌’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보다, 안식일 규정을 지켰느냐 아니냐 하는 결과보다, 그날이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밀 이삭을 뜯을 수 밖에 없었던 제자들의 힘든 마음과 아픈 속 사정을 먼저 보셨습니다. 그래서 단죄하기보다 이해하려고 하신 것이지요. 제자들은 안식일 규정을 몰라서 어긴게 아니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살고자 하는 본능에 이끌리다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규정을 어겨버렸음을 뒤늦게 깨달았던 겁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죄를 짓는 모습도 그와 비슷하지요. 하느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기 위해, 그분 뜻을 거스르기 위해 일부러 죄를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먹고 사는 일을 먼저 챙기다보니 어쩔 수 없이, 바쁘고 힘든 삶 속에서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고는, 그처럼 부족하고 한심한 자신을 책망하며 뼈저런 후회로 가슴을 치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그런 우리 마음과 상황을 헤아리십니다. 그런 우리를 비난하고 단죄하기 보다 이해하고 용서하시며, 다음 번에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격려해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그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는 윤리 도덕적 완전무결함이 아니라, 자신이 부족하고 약한 만큼 다른 이들도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이 그로 인해 저지르는 실수와 잘못들을 이해와 사랑, 측은지심과 자비로 품어 안는 일입니다. 그러니 여러 실수와 잘못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웃 형제 자매들을 만날 때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하신 예수님 말씀을 되새기며, 마음 속에 사랑 애(愛)자를 하나씩 새겨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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