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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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07-22 | 조회수26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다. 귀는 백성들의 말을 잘 듣거나 하는 곳이다. 이발하는 곳에서 근무하는 이발사들이 제일 잘 안다. 백성들의 삶을. 고정적으로 어떤 유명한 인사나 귀족들 그리고 왕의 이발을 하는 이들은 그들의 비밀을 매우 잘 알아 백성들의 고통은 무엇이고 어떻게 사는지를 매우 잘 아는 것인데 임금님은 나라를 다스려야 하니 귀가 크면 무슨 말이든 곧이 곧대로 듣고 정책에 반영한다. 어쩌면 고집불통이이다. 그런데 자기가 죽게 생겼으면 정책을 확 바꾼다. 그러므로 이발사는 귀가 어떠냐는 비밀을 지켜야 한다. 요즘 여성들이 이발하러 가면 이 세상 저 세상의 모든 비밀을 얘기한다. 이곳에서 있던 말은 비밀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이발사는 왕의 귀가 크다는 비밀을 지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왕의 귀가 크다는 것을 참지 못하여 대나무 밭에서 땅속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다”라고 하였으니 대나무 숲이 소리를 내는 것처럼 전부 퍼져 나간다. 즉, 비밀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나귀의 거시기는 매우 큰 편으로써 바보, 멍청이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매우 영리한 동물이다. 순박하고 우직하게 노력하는 사람을 비유해서 쓰기도 하는데 이는 인내심과 자기 희생을 상징한다. 이는 또한 햄릿이 아니라 돈키호태식이다. 이러하니 봉급생활을 하는 이나 또는 맷돌을 돌리는 당나귀에 비유하기도 한다. 매일 매일 어김없이 자고 일어나 똑같은 반복생활을 한다, 이는 맷돌을 돌리는 당나귀와 무엇이 다르랴! 그러나 나는 가톨릭에서 말하는 바보의 나눔에 긴 세월을 아주 조금씩이나마 돈을 내고 있다. 그럼 나는 당나귀인가? 크크크. 미국의 민주당은 당나귀가 상징이다. 이는 국민의 말을 잘 듣고 곧이 곧대로 정책을 하기 때문인데 공화당이 집권을 하면 정책이 확 바뀌게 되어 자기들만 살려고 하는 염려가 있지만 사실을 영리한 동물이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없으리라고 본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를 타고 오셨는데 그것도 겸손하시어 어린 나귀를 타고서 오셨는데 이때 환호하는 백성들은 손을 흔들고 길에 옷을 깔고 그야말로 엄청났었다. 귀가 제일 큰 사람은 부처님이시다. 이는 신체로서 본 크기요, 예수님은 활동을 하여 비유하는 것이다. 귀가 이렇게 중요한데는 머리를 그곳의 거시기로 보니 귀는 귀두를 말하는데 있다. 우리들 말에 그곳을 *대가리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발 업소에서는 머리만 깎는 것이 아니라 거시기도 맛사지를 하기에 그것에 대해서 매우 잘 안다. 이런 곳은 퇴폐업소이니 가지들 마시기를. 그것만 두고 정책을 펴면 망할 것은 뻔하다. 그래도 백성들은 그것이 큰 사람을 좋아들 한다. 민초의 삶이 그러하다. 가난한 집안에서도 웃음이 있기를 빌며.
또한 이왕이면 세빌리야의 이발사를 생각해 봅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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