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침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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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3-07-24 | 조회수64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침묵 북유럽 어느 시골 성당에 사람 크기만 한 예수님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그 예수님 동상앞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잘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기도를 하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문지기가 예수님이 서있는 곳에 한번 서 있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소원을 말하며 여러날을 기도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진짜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 네가하도 소원을 말하니 딱 하루만 너와 자리를 바꾸겠다. 그런데 나와 한가지 약속을 해야 된다. 너는 누가와서 어떤 행동이나 기도를 하던지 아무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말하지 말거라 알겠느냐?” 문지기는 절대 침묵하겠다고 굳건히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문지기는 예수님의 동상이되었고 예수님은 문지기가 되었습니다. 문지기가 예수님의 동상으로 서 있을 때 첫 번째 사람이 왔습니다. 그는 아주 부자였고 도박을 즐기는 자였습니다. 자기가 도박을 하러 가는데 돈을 잃지않고 많이 딸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소원이었습니다. 한참 기도한 부자는 갔습니다. 그런데 돈다발이 들어있는 가방을 깜박하고 놓고 나갔습니다. 문지기는 가방을 놓고 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예수님과의 약속 때문에 침묵했습니다. 두 번째 조금후에 아주 가난한 농부가 들어왔습니다. 자기 아내가 중병으로 누워 있는데 치료비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도와 달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농부가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려다가 돈 가방을 보았습니다. 그 농부는 그것이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사 기도를 드린후 돈가방을 들고 나갔습니다. 문지기는 그 돈기방은 주인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예수님과의 약속 때문에 참았습니다. 세 번째로 기도하러 온 사람은 배를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청년이었는데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기도하러 온 것입니다. 청년이 기도를 막 시작하였는데 갑자기 예배당 문이 활짝 열리더니 돈가방을 놓고 간 부자가 들어왔습니다. 돈가방이 없는 것을 확인한 부자는 다짜고짜 기도하는 청년의 멱살을 잡고 돈 가방을 내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청년은 이게 무슨 행패냐고 하면서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하였지만 이미 분이 날대로 난 부자는 청년을 이끌며 경찰서로 가자고 했습니다. 청년은 지금 바로 가지 않으면 배를 탈수가 없다 하면서 경찰서로 가는 것을 거부 했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다투는 것을 본 문지기는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말을 해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배를 타게 되었고 부자는 돈가방을 찾을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노하신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러니 내려오너라.” 그러자 문지기는 말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죄송하지만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화를 내실 정도로 잘못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잘못된 상황을 바로 잡아서 평화를 이루었을 뿐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너는 나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잘못이 큰 것이다. 그리고 네가 개입해서 해결한 것보다 침묵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부자는 어차피 그돈은 도박장에서 다 날릴 돈이니라. 그 돈이 농부에게 갔더라면 농부의 아내를 살실수 있었느니라. 더욱 잘못이 큰 것은 청년이 문제이니라. 청년은 그냥 두었으면 배를 타지못해 살수 있었다. 그러나 네가 개입하므오 그 청년은 배를 타게 되었고 그 배는 바다에서 침몰하여 죽게 되었느니라. 내가 침묵으로일하는 이유를 이제 알겠느냐?“ 인간들은 하느님의 침묵을 못견뎌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흉내를 낼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이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인간의 과도한 개입은 일을 그르칩니다. 원래 하느님은 침묵중에 계십니다. 그리고 침묵중에 일하십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을 내어버리ㅏ실 때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침묵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죄를 지고 예수님이 죽으실 때 하느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루살이 곤충에도, 들에 핀 잡초 하나에도 하느님의 뜻이 있습니다. 서로 조화를 이루기에 서로에게 유익을 주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감옥에 갇힌 어떤 사람은 감옥의 먼지나 열악한 환경을 헤아리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하늘의 별을세며 꿈을 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난 과가의 불행과 실패, 일어나지도 않은 염려를 붙잡고 있고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쁨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이란 우리 삶의 먼지를 헤아리고 불편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새로운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역사가 찰스 베어드는 꽃이 꿀벌에게 꿀을 빼앗기는 그순간에도 하느님의 수의 신비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밤이 어두울수록 하느님의 별은 더욱 빛나게 하십니다. 나는 특히 Mark Miller 교수가 작곡한 ”l believe(나는 믿네)“라는 노래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노래 가사는 1945년 독일 유태인 수용소에서 발견된 다음과 같은 낙서였습니다. 그 글은 어느 무명의 한 유태인이 죽음을 앞두고 벽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l believe in the sun, even when it’s not shining. (나는 태양이 비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는것을 믿는다) l believe inlove even when l don’t feel it. (나는 사랑을 느낄수 없을 때에도 사랑이 있는 것을 믿는다) l believe in Good even when God is silent. (나는 하느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도 하느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 고통중에 부르짖는 욥의 기도도 침묵하시는 하느님께 부르짖는 내용입니다. 하박국의 기도도 불의한 일들에 대하여 침묵하고 계신 하느님께 부르짖는 절규입니다. 우리는 너무 호들갑을 떱니다. 하느님의 침묵에 못 견뎌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침묵은 절망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침묵이십니다. 하느님은 침묵 중에 계시지만 역사는 도도하게 흘러갑니다. 하느님이 돌리시는 역사의 맷돌은 비록 천천히 돌아가지만 정확하게 돌아갑니다. 하느님의 하시는 일은 지금은 보이지 않고 들을수 없지만 지나고 뒤돌아보면 세심하게 하나하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부조리하고 혼란합니다.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고난을 받고 불의한 자들이 큰소리치고 활개를 치는 오늘이지만 하느님은 여전히 침묵중에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침묵중에 섭리하시고 침묵중에 간섭하심을.... -글쓴이 미상-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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