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요나의 기적을 생각해 보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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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07-24 | 조회수51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오늘은 비가 많이 옵니다. 아침에 비가 오길래 좀 기다리는데 잠시 소강상태여서 오늘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고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과 자그마한 우유를 사서 먹었습니다. 집으로 오는 중 어린이 놀이터에서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비둘기 한 마리가 놀이터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놀래키지 않으려고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서 비둘기가 아픈지 어떤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비둘기는 아무 것도 없는 놀이터 바닥에서 무언가를 쪼아먹길래 자세히 보니 아주 자그마한 모래 같은 것을 찍어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아, 배가 고픈가 보다.’하는 생각을 하며 무언가를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이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사정을 얘기하며 ‘뭐라도 먹을 것 좀 가지고 와.’ 했더니 ‘알았어요.’ 하는 것입니다. 이 비둘기가 집비둘기냐 아니면 산비둘기냐를 생각하였지만 - 사내아이를 낳았을 때 바치던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바치는데 예수님은 어떠했을까? 또한 성모님은? - 이내 그런 생각을 멈추고 비둘기가 한참을 앉아서 있길래 나도 쪼그린 상태에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비둘기들을 둥지에서 내려와서 그 새끼들에게 보리를 물에 불려서 먹였는데 좀 성장할 만 하면 다리가 부러져 있는 것이었어. 내가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너의 자식은 너에게 맡겨야지 내가 어떻게 너의 엄마가 되겠어.’ 어찌하여 다리가 부러지는지 비둘기의 몸을 해부하여 모래 주머니를 살펴보자 잣나무 씨앗이 나오길래 그런 것을 먹여야 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이제는 비둘기 둥지도 못 찾고 그렇게 비둘기와의 인연은 끝이 났는데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 나의 어렸을 적에 했던 것들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기다렸더니 비둘기가 손 닿는 근처까지 왔지만 무언가 줄 것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나는 편의점으로 다시 가서 바나나 킥 한 봉지를 사와서 비둘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안보이길래 날아갔는가 보다 생각을 하고 천천히 놀이터를 둘러보니 앉아 있던 자리에 있지 않고 그와는 반대쪽 벤치 아래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쪽을 다가가니까 자꾸만 도망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관리소 앞에 멈추길래 행여나 도망 갈 새라 바나나킥을 부셔서 보여주며 먹으라고 했는데 먹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자 비둘기는 날아갔습니다. 비둘기는 한 쌍으로 다니는데 ‘어디 갔니? 너의 다정한 짝은? 홀로 살아야 하는 너는 나보다 더 힘들겠구나.’ 하며 저의 마음에 약간의 서러움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은 홀로서는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와 이웃간의 교통이 함께 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요. 비둘기보다 더 좋은, 사람으로서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자 굶주림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했고 평화란 무엇인가와 자연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때 전화했던 이가 오길래 ‘야. 비둘기 날아갔어.’ 무엇을 가져왔나 했더니 김이었습니다. 비둘기가 김을 먹는지를 모르겠지만 나는 웃었습니다. 또다시 비가 옵니다. 그래서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타는 곳 아래에서 비를 피하고 그 사람에게 ‘야, 나는 이런 것을 볼 때 중학교 때 배우던 황순원 님의 소나기가 생각이 난다. 그때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했더니 미소를 짓기만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요나로 다시 한번 돌아갑니다. 왜냐구요? 요나는 히브리어로서 “비둘기”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평화로운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웃 나라들은 평화로운지도 아울러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요나의 기적을 생각해 보며 글을 올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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