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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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7-26 | 조회수472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 마태 13,1-9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오늘 제1독서인 탈출기를 보면 불평 불만만 가득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자상한 배려로 따뜻하게 돌보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적인 생명을 유지해줄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들이 진을 치고 머무르는 광야 곳곳에 내려 주시지요. 자기들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풍성한 음식을 내려주시니, 그들은 힘들게 경쟁하지 않아도 모두가 필요한만큼 거둬들여 일용할 양식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만나’는 욕심 부려서 많이 모아들여도 저장해 둘 수 없고, 조금 적다싶게 거둬들여 충분치 않아보여도 결코 모자라지 않는 ‘신비’한 양식입니다. 바로 이런 만나를 통해 하느님 사랑의 섭리가 분명히 드러나지요. 욕심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주시고,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하시며, 모두 함께 충만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그런 하느님 사랑의 섭리를 영혼의 양식인 말씀의 씨앗에 적용해서 설명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머무르는 모든 곳에 빠짐 없이 만나를 내려주셨듯, 당신 자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말씀의 씨앗, 은총의 씨앗을 빠짐없이, 충분히 뿌려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의 씨가 뿌려지는 우리 마음 상태를 네 가지로 나누신다고 해서, ‘지금 내 마음은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중에 어떤 상태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생각보다 심각한 자기 상태에 절망하여 자괴감에 빠진다면, 그건 길을 헤매도 한참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자기 성찰과 반성, 그리고 회개를 위한 노력을 통해 당신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바라시는데, 우리는 자기성찰에서 절망이라는 엉뚱한 길에 빠져 그분과 관계 맺기를 포기하는 것이니 그 모습을 보시는 주님께서 가슴아파 하시는 것이지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는 길바닥이고 누구는 좋은 땅이라고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마음 상태는 어느 한 가지 형태로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기분과 감정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돌밭과 가시덤불 사이를, 가시덤불과 좋은 땅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겁니다. 또한 우리는 부족하고 약한 존재들이라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노력한다고 해도 늘 최상의 상태, 가장 좋은 조건을 유지하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상태를 가리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 않고 당신 말씀을 우리에게 충분히 뿌려주십니다. 내 마음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든 일단 그 말씀이 내 마음 안에 심겨지도록, 그래서 누구든 자기 노력 여하에 따라 구원 받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간직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며 잘 챙겨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내 안에 말씀의 씨앗을 심어주셨음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내 삶에서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았다면, 하느님의 뜻이 내 삶 안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 열매를 맺도록 순명과 실천으로 그분 말씀을 품어 안으면 됩니다. 그렇게 그 말씀의 힘으로, 말씀과 함께 조금씩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겁니다. 그것이 내 마음을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기에 좋은 땅’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좋은 땅’인 사람도 없고, 죽을 때까지 ‘길바닥’으로 남도록 정해진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깨끗한 백지의 상태로 태어나서 어떤 이는 하느님 뜻을 따르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인’이 되고, 또 어떤 이는 그분 뜻을 ‘나 몰라라’하며 제 욕망대로 살다가 ‘악인’이 되지요. 여러분은 둘 중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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