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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개안의, 회개의, 깨달음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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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27 조회수480 추천수6 반대(0) 신고

개안의, 회개의, 깨달음의 여정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파스카 예수님뿐이다-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시편54,6)

 

동방그리스도교 영성을 공부하면서 크게 배우고 깨달아 강론에 자주 인용하는  주제가 마음의 병인 무지(ignorance)와 자기인식(self-knowledge)입니다. 무지의 병, 무지의 악, 무지의 죄에 대해 참 많이 나눴습니다. 무지의 탐욕, 무지의 교만, 무지의 분노, 무지의 전쟁, 무지의 두려움, 무지의 불안, 무지의 허영, 무지의 태만, 무지의 어리석음등 무지한 인간, 인간의 정의라할 만큼 우리의 실존적 체험입니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계속 반복되는 무지한 인간의 죄요 악행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무지한 인간에 대한 묘사입니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래서 무지의 병, 무지의 죄, 무지의 악이라 하는 것이며 궁극의 책임은 본인에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그렇게도 강조하는 회개요 깨달음이요 개안인 것입니다. 동방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소개하는 마음의 병에 대한 공부가 깊고 재미있습니다. 언젠가 나눴지만 다시 나눕니다. 우리는 자주 잊어 버리는 망각의 동물이기에 반복하여 기억하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은 마음의 병은 하느님께 대한 마음의 무지(ignorance)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가 근원적 마음의 병이다. 다음은 무지와 관련된 병이 하느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망각(forgetullness)이다. 다음은 마음의 딱딱함(hardness) 또는 단단함(toughness)이다. 또 다른 두가지는 눈멈(blindness)과 오염(contamination)이다.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고 하느님의 현존을 인정할 수 없는데 이것이 눈멈이요 오염이다. 다음은 경솔(imprudence)이다. 마음은 어리석음으로 고통을 받는다. 모든 마음의 병들은 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무지에 대한 답인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자기인식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것이 참으로 겸손이요 지혜요 우리 인생은 무지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알아가는 자기인식의 평생훈련, 평생공부입니다. 마음의 눈이 열려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알아가는 개안의 은총, 개안의 여정은 회개의 은총, 회개의 여정, 깨달음의 은총, 깨달음의 여정이 하나로 연결됨을 봅니다. 개안의 기쁨을, 놀라움을 노래한 고백기도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이래서 평생 끊임없는 기도와 끊임없는 개안을, 회개를,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 말고는 무지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평생 훈련하고 공부해도 여전히 남아있을 무지의 어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계속 평생 훈련하고 평생 공부해야 할 하느님 공부, 나를 아는 공부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공부가 빠진, 지혜가 빠진 지식을 쌓아가는 세상 공부들 다 헛 공부입니다. 이상한 괴물이, 잔인한 야수가, 무기력한 중독의 폐인이 되기 십중팔구입니다. 오늘 길을 잃고 해매는 교육의 난맥상亂脈相도 바로 여기서 기인합니다. 옛 동서방의 공통된 참공부는, 평생공부는 참사람이, 성인이, 군자가 되는 공부였습니다. 인문학 공부는 사라져가고 실용학 공부가 대세가 된 무지한 교육 현실입니다.

 

평생 하느님 은총과 함께 가야 할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알아가는 평생 훈련이요 평생 공부입니다. 인생 광야 여정,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로 하느님을 알아가고 자기를 알아가면 성인이지만 하느님을 잊고 자기를 잊으면 괴물도 되고 폐인도 되는 것입니다. 살아 있다 하여 다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결국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 말씀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본질은 무지가 아니라 말씀이자 사랑이라 함이 맞습니다. 무지를 깨우쳐 주기 위한 성서의 말씀 공부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늘 나라의 비유들입니다. 참행복은, 참자유는, 참평화는, 참기쁨은 무지의 어둠에서 해방되어 빛이자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알아갈 때입니다. 바로 이런 우리를 향한 주님의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그러니 무지에 대한 답은 주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정화와 성화의 변화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진리를 가르쳐 주는 오늘 탈출기입니다. 모세와 백성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엄한 순간에 대한 묘사입니다.

 

-“백성에게 가거라.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셋째 날을 준비하게 하여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세가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오자 그들은 산기슭에 섰다. 주님께서 시나이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 모세를 그 산봉우리로 부르셨다.-

 

주님의 집인 요셉수도원에 사는 우리 수도자들과 매일 미사에 참석하는 형제자매들 오늘 탈출기의 모세와 백성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산, 불암산 기슭 주님의 성전에서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를 통해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 바로 이것이 전례의 궁극 목표입니다.

 

제가 늘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전례요 우리 수도원의 일과표입니다. 말그대로 무지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알아가게 하는 기도와 노동과 공부가 균형과 조화를 갖춘 회개의 시스템, 깨달음의 시스템, 개안의 시스템같은 일과표이기 때문입니다. 이또한 평생 하루하루 부단한 선택과 훈련과 습관을 목표로 합니다. 개안을, 회개를, 깨달음을, 주님을 선택하고 훈련하고 습관화하여 날로 주님과의 일치를 깊이하는 것입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은 단 하나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과 함께 가는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무지의 병에 대한 결정적 예방제이자 치유제임을 깨닫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성무일도 3시경 찬미가 2절입니다. 왜 파스카 예수님이 무지에 대한 답인지 보여줍니다.

 

“진리여 사랑이여 목적이시여

 우리의 다함없는 행복이시여

 주님을 사랑하고 믿고바라며

 주님께 도달하게 하여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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