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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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7-29 | 조회수28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요한 11,19-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아무런 기대나 희망이 없는 삶, 그래서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늘 똑같은 식이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삶은 참으로 허무하고 지루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습니다. 이건 ‘살아도 사는게 아니다’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를 모릅니다. 우리 삶에 참된 희망을 제시하고 단단하게 지탱해줄 든든한 ‘후원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며 필요한 도움을 줄 ‘키다리 아저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참된 신앙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궁극적인 목표, 즉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거기서부터 참된 희망이 나오고 그 희망이 우리에게 이 고된 삶을 기쁘게 살아갈 용기와 힘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부활이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습니다. 그런걸 믿어봐야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하고 심드렁한 태도를 보입니다. 신앙생활이 타성에 젖어서 그렇습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이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목표가 클수록 그 과정에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부활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지금 즉시 나에게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당장 먹고 사는데에 지장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냥 지금 상태 그대로 있는게 더 편하고 좋다는 겁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내 삶에 굳이 파문을 일으키지 말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잔잔하고 평온한 시간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우리 삶은 고통과 시련이라는 파도가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불확실성의 바다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바다에 떠 있으면서 희망이라는 부표를 단단히 붙잡고 있지 않으면 마음의 힘이 다하여 깊은 절망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마르타조차 고통과 시련이라는 파도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이라는 비관적인 상황을 마주한 그녀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참된 믿음과 희망을 지니지 못했기에,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 고통 받았습니다. 물론 주님을 믿는다고해서 슬픔과 고통에 무감각해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께 대한 참된 믿음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으면 절망이라는 바닥에 가라앉아 있지 않고, 되도록 빨리 그 바닥을 차고 다시 올라올 힘이 생깁니다. 주님은 바로 그 힘을 주시고자 마르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부활과 영원한 생명은 그것이 내 삶 속에서 반드시 실현된다고 믿어야, 언젠가 나중에 오는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믿어야 지금 즉시 내 것이 되고 나를 살게 합니다. 구원은 죽은 다음에 하느님 나라에 가는게 아닙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굳게 믿고 그분의 뜻과 가르침을 실천하여 그분과 함께하는 기쁨과 행복을 ‘지금 여기에서’ 충만하게 누리는 것이 우리가 믿고 바라고 살아야 할 구원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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