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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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8-04 | 조회수709 | 추천수7 | 반대(0) |
예수님께서 하느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신문을 만드는 제게 밭은 당연히 신문의 지면입니다. 저는 지면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느라 일주일이 훌쩍 지나갑니다. 정창용 신부님의 ‘아이티’ 이야기는 가난 속에서 예쁘게 피는 꽃과 같습니다. 윤채영 선생님의 심리 여행은 은은함이 드러나는 연꽃 같습니다. 원영배 부제님의 평화칼럼에서는 인문학에서 피어나는 신학을 볼 수 있습니다. 리길재 기자님의 ‘공소’ 이야기에서는 국화꽃 향기가 납니다. 김광현 교수님의 ‘성당건축 이야기’에서는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김용은 수녀님의 ‘오늘도 안녕하세요?’에서는 자아를 잃어버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영성의 샘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보물이 묻혀 있는 ‘가톨릭평화신문’을 더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성공, 명예, 권력이라는 보물을 찾으려는 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참된 보물이 묻혀있는 평화신문이 있음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최근에 제가 신문에서 발견한 보물은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입니다. 박형찬 교수님은 가톨릭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큰 족적을 남겼던 분들 중에는 가톨릭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동안 소개된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지용(프란치스코), 장발(루도비코), 피천득(프란치스코), 윤석중(요한), 장우성(요셉), 김기창(베드로), 마해송(프란치스코), 윤용하(요셉), 김세중(프란치스코), 박완서(정혜 엘리사벳), 찬상병(시몬), 최인호(베드로), 정채봉(프란치스코), 윤정희(데레사)” 이분들은 한국 문화 예술계의 별이었습니다. 가톨릭 예술가로서 밭에 묻혀 있는 보물이었습니다.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고 합니다.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천에 있는 세잎 클로버는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쩌다 발견하는 네잎 클로버를 보고 기뻐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그 행복을 행운을 통해서 얻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행운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와 같습니다. 찾기도 어렵지만 찾았다고 해도 남들에게 빼앗기곤 합니다. 가톨릭 예술가들은 '예술‘을 통해서 행복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행복이 밭에 묻혀 있는 보물입니다. 오늘 독서는 ‘희년’을 이야기합니다. 희년의 근본정신은 "남이 나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도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셨듯이 가난한 이, 굶주린 이, 헐벗은 이, 노예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합니다. 이것이 희년의 정신이며 이런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밭에 묻혀있는 보물을 찾는 것입니다. 희년은 정해진 햇수나 날짜가 아닙니다.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매일 매일이 희년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들에서 보물을 찾으려는 사람은 희년이 왔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행운 속에서 보물을 찾으려는 사람도 희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나눔, 자비, 희생, 사랑’을 보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보물은 자신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재물, 권력, 명예’이기 때문입니다. 헤로데는 희년을 선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희년을 몰랐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준비하였던 세례자 요한을 죽였습니다. 욕망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은 결코 희년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동족끼리 속여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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