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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을 믿기 이전에 최소한의 신앙인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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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06 조회수367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주님의 변모를 그냥 2000년 전 하나의 사건으로만 복음을 본다면 하느님 구원의 역사는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거룩하게 눈부신 모습으로 변모를 하셨을까를 우리는 진지하게 묵상해봐야 합니다.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로 치부를 하면 되지 않습니다. 쉽지만은 않지만 우리도 점점 거룩하게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처절한 몸부림을 해야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죄라는 본성을 타고 난 이 육신을 거룩한 몸으로 변화를 시킨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만약 그게 쉽다면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아로서 오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 자체가 거룩하시기 때문에 저희도 거룩한 사람이 돼라고 요청하십니다. 거룩한 사람이 돼라고 하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으실 겁니다. 처음부터 거룩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과는 뭐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갖춘 건 아닙니다. 신자가 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화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즉, 변화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흔히들 이런 말을 합니다. 신자라고 해서 다 착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하시는 분의 의도는 알지만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걸 자인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자인을 하게 되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노력을 들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다보면 그런 현상에 안주하려고만 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하느님을 믿는 신앙생활의 가치는 없는 것입니다. 그냥 무늬만 신자밖에 되지 않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 이전에 말입니다. 거룩은 둘째치고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사람이라고 표현할 때 사람이라는 말이 포함돼 있지만 그 전제가 이미 거룩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자체로서는 거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도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으로서의 해야 하는 행실에서 온전함을 갖추도록 노력을 해야 그런 다음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의 본성을 가질 수 있는 모습으로도 변화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 모든 걸 단적으로 하나로 표현하면 신앙인, 아니면 하느님을 믿기 전에 최소한의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본적인 일부터 우리는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천년 만년 성당을 다니고 미사를 봉헌해도 절대 변화지 않을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 수도원에 사시는 수도자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수도자가 되기 위해 수도원과 수녀원에 갑니다. 우리는 흔히 그곳에서 하는 게 당연히 수도생활이라고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세속에서 벗어나 수도원에서 말 그대로 수도를 한다고 일반적으로 인식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십니다. 사실 수도원에 입회를 해서 수도생활을 잘하려면 그곳에서부터 수도생활의 출발점이 아니고 이미 수도원에 입회를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세상 표현으로 말하자면 닦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어느 정도 세속의 물이 빠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다르게 표현하면 이미 세상에서 수도자로 살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기본기가 갖추어진 상태에서 수도원에 입회를 하고 수도생활을 해야 그나마 진정한 수도생활을 할 수 있는 거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겉은 수도자의 모습으로 사는지는 모르지만 정작 그런 모습으로 생활을 하게 되면 진짜 수도생활을 하는 다른 수도자들이 수도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들러리와 같은 수도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수도자도 자신이 수도생활을 하는 환경에서 그와 같은 들러리 수도자도 어쩌면 자신의 성화를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도 그와 같을 수 있습니다. 똑같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도 어떤 사람은 진짜 방금 말씀드린 진정한 수도자로서 수도원에서 살아가시는 분과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들러리 수도자처럼 우리도 들러리 신자로 그냥 한평생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으로서 살다가 삶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결과가 발생한다면 그 사람의 한평생 신앙생활이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와 같은 말씀을 드리는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말씀드리기 위한 서술에 불과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종 정점에는 거룩한 신앙인으로 변화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이 땅을 밟고 지나는 육신의 옷을 입고 있는 이상 최소한의 신앙인이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기본적으로 인간세상에서 지켜야 할 기본부터 잘 다져야 그게 기본기가 돼서 제대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성당만 다닌다고 해서 또 줄기차게 미사를 봉헌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오랜 세월 수많은 기도를 하고 미사를 봉헌하는 열심한 신앙인에게서도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많은 기도와 미사의 은총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아무리 거룩한 은총의 통로가 되어도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씨부리는 사람의 비유에 나오는 비유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가짐이 어떤가에 따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신앙생활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들러리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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