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섬김과 나눔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본받읍시다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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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8-07 | 조회수404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섬김과 나눔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본받읍시다 -모세, 예수, 프란치스코 교황-
“환호하여라, 우리의 힘 하느님께!”(시편81,2ㄱ)
시편 화답송 후렴에 힘이 납니다. 나이 70대를 넘어서면서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는 동요들이고, 가장 많이 읽는 책들은 위인들의 평전입니다. 아마도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여기 수도원에서 정주하다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제가 아침 산책 때 마다 부르는, 또 피정중 “희망의 여정” 강의시 연세 지극한 피정자들이 한결같이 열창하는 동요는 바다입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참으로 각자 속한 공동체에 희망, 꿈을 주면서 그 희망과 꿈을 실현시켜 가는 희망의 지도자가, 꿈의 지도자가 위대하고 훌륭한 지도자들입니다. 이런 지도자를 지닌 공동체는 행복한 공동체입니다. 명심할 바 지도자는 공동체의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는 공동체의 수준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정말 훌륭한 지도자를 뽑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직접 보고 배우는 훌륭한 희망의 지도자는 공동체에 얼마나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읽었던 평전은 대부분 위대한 공동체들의 지도자들의 평전이었습니다. 제가 아끼고 보관중인 “퇴계평전(인간의 길을 밝혀준 스승)”이, “율곡평전(나라를 걱정한 철인)”이, “다산평전(백성을 사랑한 학자)”이 그러하고 무수한 평전들이 대부분 공동체에 기여한 분들입니다.
수많은 위대한 평전보다 오늘 지금 살아 있는 평전이라 할 수 있는, 직접 보고 배울 수 있는 위대하고 훌륭한 희망의 지도자들을 모신 공동체는 얼마나 행복하겠는지요! 그러니 2000년 위대한 전통을 지닌 우리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참 행복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지도자로 모실 수 있는 성인들이 즐비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지도자 없다 실망할 것이 아니라 이런 성인들을, 위인들을 찾아 배우는 것이요, 내 자신 지도자의 덕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참으로 내 자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인생 궁극의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입니다. 공동체의 지도자의 역할과 영향력은 얼마나 절대적인지요! 작금의 혼란중인 국내 상황을 접하면서 누구나 지니는 생각일 것입니다. 정말 지도자 잘못 만나면, 지도자가 통합의 중심 역할을 못하면, 공동체도 나라도 망할수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미사 독서중 위대한 지도자 두 분을 만나 배웁니다. 민수기의 모세요, 마태복음의 예수님입니다. 저는 여기에다 한 분을 주저없이 추천하니 현재의 위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입니다. 정말 살아 있는 성인을 교황으로 보신 천주교 신자들은 행복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혼란스러운 국내상황의 어둡고 우울한 뉴스들을 대하다가 교황청 뉴스에 눈이 번쩍 열렸고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Pope Francis: Next World Youth Day in Seoul, South Korea” (교황 프란치스코: 다음 세계 젊은이의 날은 남한의 서울에서)
사우스 코리아에서 코리아로 통일된 한나라라면 얼마나 좋겠는지요! 교황님은 행사를 마치면서 집전한 미사에서 강론후 조마조마 기다리던 관중들에게 “유럽의 서쪽끝에서 극동의 남한 서울로” 2027년 세계 젊은이날 행사가 열릴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처럼 한국 천주교회의 위상은 세계적입니다. 이번 37차 세계 젊은이날 행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대한 희망의 지도자로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교황님은 폐막 미사중 강론에서 “교회와 세계는 지구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젊은이들을 필요로 한다”며 “빛나라shine”, “들어라listen”, “두려워하지 마라be not afraid”는 요지의 명강론을 하셨습니다. 늘 감탄하는 바이지만 저는 교황님 강론보다 더 좋은 강론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홈페이지에 오르는 교황님 강론은 가능한 모두 읽으려 노력합니다.
이어 위대한 지도자 모세와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에 대한 공부입니다. 민수기의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의 진퇴양난, 고립무원의 처지가 참으로 외롭고 힘들고 불쌍해 보입니다. 예나 이제나 불평하는 배은망덕의 무지의 사람들에 대해, 구제불능의 사람들에 대해 얼핏 절망감도 듭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계속되는 탐욕의 무지한 인간의 현실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하느님 중심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이었는지 다음 절박한 기도에서 잘 드러납니다. 찬미와 감사 기도만 있는게 아니라 이런 탄원기도도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정신 건강을 위해 이런 하소연의 스트레스 푸는 기도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하느님도 그의 사정을 알고 기도하는 자도 자신의 신원을 더욱 분명히 자각하게 됩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이 종을 괴롭히십니까? 어찌하여 제가 당신의 눈 밖에 나서, 이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십니까? 제가 이 백성을 배기라도 했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하였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당신께서는 그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유모가 젖먹이를 안고 가듯, 그들을 제 품에 안고 가라 하십니다.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제발 죽여 주십시오. 제가 당신의 눈에 든다면, 제가 이 불행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너무 실감나는 내용이라 전문을 인용했습니다. 이렇게 솔직하니 하느님은 모세를 전폭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참으로 이렇게 하느님께 기도하는 자들만이 국민의, 공동체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이런 기도하는, 겸손하고 지혜롭고 믿음 좋은 대통령을, 교회 지도자로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복음의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배경은 모세와 똑같은 광야입니다. 광야 여정중의 우리를 연상케 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지도자이자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모세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예수님의 조용한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세례자 요한이 죽음에 관한 충격적 소식을 듣고 자신의 불길한 운명을 예감했을 주님은 외딴곳으로 물러가 자신을 추스르며 영적전의를 새로이 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빈 광야의 외딴곳이 아니라 외딴곳의 광야를 가득 채운 참 가엾은 굶주리고 병든 군중들이었습니다. 예나 이제나 가난한 민초들이, 민중들이 겪는 고난이 참 길고 큽니다.
예수님의 대응이 신속 기민합니다. 예수님의 진인사대천명의 자세가 빛을 발합니다. 모세처럼 탄원과 탄식의 기도도 바치지 않고 조용히 제자들이 가져온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참으로 간절히, 경건히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은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상징합니다. 광야에서 모세에 이어 광야에서 예수님이요 광야 여정중인 우리를 위한 똑같은 파스카 예수님께서 당신 사제들을 통해 미사중 성체를 나누십니다. 바로 이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지극정성의 사랑과 기도에 감격, 감동한 이들이 마음을 열고 가진 것을 다 나눴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오늘 이야기를 “빵을 많게 하신 (mulitiplication)기적”이 아니라, “빵을 나누게 하신(distribution) 기적" 이라고 부릅니다. 군중이 한 마음이 되어 자발적으로 마음을 열고 가진 것을 모두 나누게 하셨으니 아, 바로 이것이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 예수님의 위대함입니다.
하느님을 감동시키고 군중을 감동시킨 기도와 사랑이 참으로 지도자의 위대한 자질임을 봅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했다 합니다. 없어서 굶주린게 아니라 나누지 않아 굶주린 것이요, 나누기로 하면 오히려 차고 넘칠 것입니다. 참으로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섬김과 나눔의 영성이 절박한 시절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위대한 주님을 본받아 각자 삶의 자리에서 섬김과 나눔의 지도자다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마련하신 빵을 저희에게 주셨나이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지혜16,20).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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