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6. 나병 환자의 치유 / 갈릴래아 활동기[2] / 부스러기 복음[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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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08-07 | 조회수41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 나병 환자의 치유(마태 8,1-4; 마르 1,40-45; 루카 5,12-16) / 공관복음[31]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이가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어느 고을에 계실 때, 온몸에 나병 걸린 이가 다가왔다. ‘나병’은 통상 ‘악성 피부병’으로, 여기서는 불치의 문둥병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는 예수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청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만 해도 문둥병자는 ‘하늘의 벌’을 받은 죄인으로 취급되어 격리 생활을 해야 했다. 친족 간의 만남도 제한되었다. 그만큼 전염성이 강한 것으로 여길 때라, 공동체에서는 죄의 표지까지 각인시켜 아예 제외시켰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내가 하고자 하니 그렇게 되어라.”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금지하는데도 왜 나병 환자에게 손 내밀었을까? 사실 예수님을 찾은 그 환자는 육신의 상처로 혐오나 멸시를 받을지언정, 영혼만은 깨끗했다. 그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정성껏 고백하며, 전적으로 그분께 의지했다. “주님! 당신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신앙 고백으로 예수님 치유를 이미 한 몸에 받았다. 그래서 그분께서 만지려 손 내밀자 나병은 바로 사라졌다. 이처럼 예수님의 자비의 손은 나병의 상처를 만진 게 아닌, 깨끗이 몸을 치유된 만지신 것이다. 아무튼 율법은 나병 환자와 접촉을 엄격히 금한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손 내미셨을 때 이미 율법은 폐기되었다. 아니 더럽혀진 율법의 완성이라 할까. 이는 육신의 상처를 가지고 영혼마저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거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권능을 말씀과 행동으로 드러내셨다. 그리고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이를 누구에게도 알리지 마라. 다만 사제에게만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해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치유의 증거가 되게 하라.” 이렇게 깨끗이 치유된 나병 환자는 율법에 따라 사제가 그를 공인한 다음에야, 다시 종교 공동체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나병의 치유는 죽은 이를 되살리는 것에 버금가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따라서 이는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음을 드러내는 표징으로서, 죽은 이들의 부활과 함께 메시아 시대의 도래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직 당신의 때가 차지 않았기에 ‘함구령’을 내린다. 그만큼 그분께서는 당신을 메시아로 드러내시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그 나병 환자는 나가서, 이를 널리 알리고자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만지신 겸손과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자비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기에 그랬으리라. 그래서 예수님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 많은 이가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 모여 왔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모여들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향한 이 나병 환자의 신앙 고백은 그의 영혼은 깨끗함을 드러낸다. 이처럼 그는 그분께서 하시고자 한다면 자신의 더럽혀진 육신이 낫게 되리라는 확신한 믿음을 가진 소유자다. 또한 그는 치유가 되고 안 되고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라며, 그 어느 조건도 내세우지 않고 전적으로 예수님께 의탁한다. 이에 예수님께서도 그의 믿음을 보시고는 당신의 권능으로 당신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래, 내가 하고자 하니 네 믿음대로 되어라.” 며칠 뒤 예수님께서는 배로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인 카파르나움으로 다시 들어가셨다.[계속] [참조] : 이어서 ‘7. 중풍 병자의 치유(마태 9,1-8; 마르 2,1-12; 루카 5,17-26)’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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