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앙 - 용서, 구원은 죄로부터 출발 (마태18,21-1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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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8-17 | 조회수33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신앙 - 용서, 구원은 죄로부터 출발
복음 (마태18,21-19,1)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일흔 일곱 번 까지 용서(容恕)는 희년의 정신으로 하는 용서임을 배웠었다.
(레위25,8-9) 8 ‘너희는 안식년을 일곱 번, 곧 일곱 해를 일곱 번 헤아려라. 그러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마흔아홉 해가 된다. 9 그 일곱째 달 초열흘날 곧 속죄일에 *나팔 소리를 크게 울려라. 너희가 사는 온 땅에 나팔 소리를 울려라. = 숫양이 죽어 남긴 뿔 나팔 소리다. 곧 나팔 소리는 죄인들에게 용서(容恕), 자유(自由), 해방(解放)을 주시기 위해 그들의 속죄 제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복음 선포의 예표(豫表)다.
(레위25,10) 10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의 희년이다. 너희는 저마다 제 소유지를 *되찾고, 저마다 자기 씨족에게 *돌아가야 한다. = 그리스도를 통(通)해 거저 얻는 회복(回復)이다.
(1요한4,9-10)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로마5,10) 10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인간(人間)은 용서 받아야 할 존재(存在)다.
23 *그러므로 하늘 나라는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 하늘 임금은 죄인(罪人), 원수(怨讐)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들 죄의 속죄 제물로 당신 아드님을 내주신 그 무조건적 용서, 자비, 사랑이심을 봤다. 그러니 그분 앞에서 심판(審判)을 받을 때, 그 하늘 임금님의 용서, 자비, 사랑만을 의지해야 한다.
24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 만 달란트- 당시 이스라엘이 로마에게 조공(租貢)으로 바쳤던 금액보다 더 큰 금액이란다. 사람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금액(金額)인 것이다.
25 그런데 그가 빚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주인은 그 종에게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그 밖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 빚은 죄 값이다. 곧 우리의 죄 값은 우리 스스로가 갑을 길이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 팔아- 자신이 갖은 모든 것이 아무 가치(價値)없음을 인정하는 버림, 자기부인(自己否認)을 하라는 것이다.
26 그러자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제발 참아 주십시오.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 자기부인(自己否認)이 안 되니 자신이 갚겠다고 하는 것이다. 자기부인(自己否認)이 되었다면 “잘못 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다 갚겠단다. 어떻게 그 많은 빚(죄)을 ‘해결(解決)하겠다’는 것인지.... 자신의 처지, 주제(主題)파악을 못하고 오만(傲慢)을 부리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사랑, 자비이신 분의 눈에 애초로워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27 그 종의 주인은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 무조건적(無條件的) 하느님의 은총(恩寵), 은혜, 용서, 회복이다.
28 *그런데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그러자 그를 붙들어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 멱살을 잡고(프니고- 숨을 막다) 곧 죽이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용서, 죄의 더러움, 흉측함의 무게를 모르기 때문이다. 한없는 사랑, 자비로 자신의 추악(醜惡)한 죄가 없어졌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큰 잘못, 죄악보다 다른 이의 잘못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픔, 고통만 보고 다른 이의 아픔, 고통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고 다른 이의 잘못에는 사정이 없다. 그래서 숨을 막는 것이다.
29 그의 동료는 엎드려서,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서 그 동료가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31 동료들이 그렇게 벌어진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죄다 일렀다. 32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불러들여 말하였다. ‘이 악한 종아, 네가 청하기에 나는 너에게 빚(죄)을 다 탕감해 주었다. 33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34 그러고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죄)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35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十字架)로 용서 받았듯이 다른 이 또한 그 예수님의 십자가로 용서 받았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 예수를,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시기 위해 대속(代贖)의 십자가를 지게 하셨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렸을 때 마음으로부터 용서(容恕)가 나오는 것이지 우리의 작심(作心), 결심(決心)으로는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34절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는데 자신의 능력으로 갚을 수 없는 그 많은 빚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 답(答), 길은 회개(悔改)다. 자신의 생각에서 돌아서서 주인, 임금과 다시 셈을 하면 된다. “주님! 저에게는 능력(힘)이 없습니다. 빚(죄)을 갚을 길(방법)이 없습니다.” 하는 그 자기 버림, 부인(否認)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대속 하시고 갚아주신, 주인께서 예비하신 그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다. “하느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시로 잘못을 하고, 실패하고 넘어진다.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십자가로 가는 것이다. 그때마다 ‘주님의 십자가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하며 대속의 십자가를 예비하신 하느님께 감사가 나오게 되고, 그 감사가 나를 바꾸는(변화) 힘이 된다. 그래서 우리의 죄, 실패가 있는곳에 하느님의 은총(恩寵)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로마5,20-21)
(로마8,28)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모든 것- 희로애락(喜怒哀樂), 선과 악을 통해 선(용서, 구원)을 이루시는 하느님이시다. 용서(容恕), 구원(救援)의 신앙(信仰)은 죄로부터 출발(出發)하는 것이다.
19,1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 속죄 제물로 죽은 숫양의 소리, 곧 하느님의 사랑, 용서, 회복인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러 가셨을 것이다.
☨보호자 성령님! 당신의 가르침과 이끄심으로 우리 자신의 본질(흙-없음, 죄인)을 깨닫는 자기부인의 삶을 살게 하시어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 자비만을 의탁하는 자녀로 돌아가게(회복)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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