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가해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용서를 위한 두 가지 지식> 복음: 마태오 18,21-19,1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
초상집에 가면 아주 가끔은 형제들끼리 여러 가지 이유로 싸우는 경우를 봅니다. 많은 경우 부모에 대한 원망이 형제들에 대한 원망으로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위해 눈물 흘리는 두 형제가 서로 싸울 수는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웃에 대한 용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용서의 힘은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도 그리스도께서는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신 것은 인정하면서도 모든 이를 위해 피를 흘린 것이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예정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 미사 경문도 “모든 이”에서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해 흘릴 피다!”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를 위해 피를 흘리시지 않으셨다면 예수님께서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지 않은 사람을 내가 사랑한다고 그분이 기뻐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우리 형제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형제가 우애 있게 잘 지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형에게 내미는 화해의 손길, 그리고 먼저 떠난 어머니께 전하는 진심’이란 유튜브 동영상이 있습니다. 이지형이란 서른 살 남자 청년인데 그의 고민은 유일한 혈육인 형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일찍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형과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것은 군대에서 제대하고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형에게 5만 원짜리 보험에 가입해 달라고 했는데 형이 거부한 이유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안 계셔서 동생은 형에게 부모의 사랑을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당시 형은 20대 후반이었고 변변한 직장이 없이 결혼하여 아기까지 낳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형에게 형수에게 빌붙어 사는 놈이란 식으로 말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형과 계속 화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돈이 좀 생기면 조카들에게 장난감도 보내고 형수 선물도 보냅니다. 그러나 형은 집에 찾아오지 말라며 여전히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형도 형대로 상처가 컸던 것 같습니다. 동생은 이런 TV 프로에까지 나오며 형에게 미안하다 하고 화해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형제니까 화해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 될 일일 것입니다. 화해해야만 하는 이유는 부모님 때문입니다. 특별히 어머니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약을 드시거나 차로 전봇대에 부딪혀 죽으려고 시도할 때 아들로서 그것을 막아드리지 못한 죄책감이 컸던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군대에 갔을 때 어머니가 또 죽고 싶다고 말하며 힘들어할 때 위로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 거면 죽어버리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진짜 이틀 뒤 목숨을 끊으신 것입니다. 누구나 어머니께 조금이나마 미안한 마음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 탕감 받은 액수가 일만 탈렌트입니다. 약 6조 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부모가 없다면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없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기 위해 아드님을 죽이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일만 탈렌트는 우리가 모두 탕감 받은 액수입니다. 그런데 100데나리온도 형제끼리 탕감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느님께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셔도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녀가 형제를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위 청년이 어머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어머니께서 바라시는 일, 형제를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중에 자신도 죽어서 어머니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지금 혼자 산소를 방문할 때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내가 누군가 용서하기 위해 혼자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용서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위로부터 새로 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내가 탕감 받은 액수에 미안함을 느껴야 합니다. 내가 찌른 예수님의 상처를 자주 바라봐야 합니다. 그것에서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 인다면 그다음은 예수님께서 나만을 위해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해 흘리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분 앞에 나아가기 위해 모든 이를 용서하고 화해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위해 돌아가시고 모든 이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이 두 가지 지식만이 우리를 참 용서의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VupNss6jcfA 유튜브 묵상 동영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