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17.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심 / 갈릴래아 활동기[2] / 부스러기 복음[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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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08-18 | 조회수29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7.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심(루카 7,11-17) / 공관복음[42] 바로 그 뒤에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나인은 나자렛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나자렛에서 걸어서 두어 시간 거리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곳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이처럼 공관 복음에서 예수님 일행이 죽은 이를 만나는 것은 이 외아들이 처음이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는데, 그녀는 한없이 울고 있었다. 이렇게 동정녀의 아들 예수님께서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나인이란 고을 길에서 슬프게 만난다. 백인대장의 종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달라는 청을 받으셨는데, 과부의 죽은 외아들은 사전에 아무 초대도 없이 그곳에 가신 것이다. 그 누구도 죽은 자를 살려달라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당신 스스로 일행을 보란 듯이 대동하고 가까이 가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어, 죽을 지경의 종의 치유를 드러내시고, 이제는 죽은 이마저 살리실 모양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녀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여기서 편의상 ‘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옛날 팔레스티나에서는 장례 때에 그리스나 로마에서처럼 관을 이용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우리의 상여와 같은 것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간단한 들것에다 천으로 두른 시체를 놓고 옮겼다. 아무튼 표현상 관이었지, 뚜껑이 없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아무튼 남편과 외아들마저 모두 잃은 어느 여인을 측은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당시 과부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에 속했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아주 각별히 아끼셨다. 죽은 이를 메고 있는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지어 그녀와 함께 가는 모습으로 봐서 마을 전체가 이 외아들의 죽음을 애통히 여기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그 고을 그 누구와도 이 슬픔의 사연을 말로 나누지 않고 눈으로 나눈다. 큰 무리의 행렬 그 자체가 바로 안타까움이었고, 과부의 그 처량한 울음소리가 예수님을 향해 자비를 간절하게 청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단지 죽음의 두려움에 누워있는 젊은이에게 예수님께서는 자비의 손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행렬이 잠시 멈추자, 생명 그 자체이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찾아 가신 죽은 그이에게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제 일어나라.”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을 ’죽은 자야‘라고 부르지 않으셨다. 이미 그는 ’산 자‘이다. 그 젊은이는 울부짖는 엄니를 어루만지시는 예수님의 ’울지 마라‘의 음성을 듣는 순간, 체온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면서 맥박이 뛰기 시작했을 게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그 젊은이의 숨결이 움직이는 것을 손으로 확인하시고는 ’젊은이, 이제 그만 일어나라‘ 하고 일으켜 세우시는 것이다. 그러자 죽은 이가 벌떡 일어나 앉아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과연 그 젊은이는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알아들으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그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롭게 죽은 과부의 아들은 예수님 권능으로 살아났다. 이에 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나셨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여러 기적에서 죽은 이의 첫 소생은 나인이라는 고을에서의 과부의 외아들이었다. 그 후 예수님의 이 이야기가 온 유다와 그 둘레 온 지방에 널리널리 퍼져 나갔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감옥에 있는 요한에게 전하였다.[계속] [참조] : 이어서 ‘18.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마태 11,2-11; 루카 7,18-35)’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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