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공든 신앙은 무너질까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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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3-08-18 | 조회수35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어제 저녁 옆 본당에서 저녁미사를 봉헌하고 신부님의 강론 한 대목의 말씀이 와 닿는 부분이 있어서 묵상을 하며 귀가를 하다가 그 내용을 굿뉴스 게시판을 열어서 한참 써내려갔는데 거의 마무리 멘트를 하려고 하는 순간에 어떻게 된 것인지 마우스가 움직이면서 작성한 글이 순간 사라졌습니다. 순간 허탈했습니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긴 한데 잘 없어서 그냥 최근에는 굿뉴스 게시판에서 작성하고 바로 등록해서 올리는 게 편해 그렇게 했습니다. 어제는 그렇게 되고 나서 다시 작성하려고 하니 순간 맥이 빠져 물론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데 원래 글이라는 게 그때 순간 떠오르는 느낌이 계속 나올 때 그 느낌이 탄력을 받았을 땐 쉽게 작성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두 번째 작성할 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걸 알아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어제 묵상한 내용은 언제 다시 한 번 기회가 되면 올릴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해서 묵상한 게 또 하나 있습니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속담입니다. 어제 제가 작성한 글은 공든 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일로 이런 내용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아래 한글에서 작성한 후 복사를 해서 굿뉴스에 붙여넣기를 했습니다. 아래 한글에서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원고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긴 했습니다. 저는 어제 사건을 두고 ‘공든 탑도 무너질 수 있다’라고 속담을 반대로 해서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이것도 신앙이라는 틀 안에서 말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할 수가 없습니다만 저는 이런 맥락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직접 여러 차례 다른 분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경우를 보고 저에게는 하나의 신앙의 교훈으로 삼고 있을 뿐입니다. 그 내용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영세를 받고 열심히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신 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봐도 그렇고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신 분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분이 언제부터인가는 신앙을 가지고 있긴 한데 주일만 지키는 신자로 됐습니다. 주일만 지키는 신자라고 해서 이 자체가 뭔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이전과 비교하면 예전처럼 할 수 있는 분인데 그렇게 신앙생활이 변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를 통해서 오랜 세월 동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신 것과 지금의 상태를 비교해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부터는 가정법입니다. 이게 만약 공든 탑이 된다면 어떨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한 말씀을 인용하자면 마태오 복음 25장 30절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이건 조금은 극단적인 표현이긴 합니다만 이런 관점으로 한번 묵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제가 이런 묵상을 오늘 하게 된 것도 오전에 확인을 했지만 새벽에 미국에서 보내주신 신부님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영상통화를 하며 우연히 제가 개신교에서 개종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니 신부님께서 신부님이 계신 곳과 4시간 떨어진 곳에 계신다고 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미국 목사님의 책을 언급해 주셨습니다. 바로 옆에 책이 있어서 보여주시더군요. 스콧 한이라는 분의 책입니다. 이분이 쓰신 책은 10년 쯤에 제가 읽은 경험이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주신 책은 최근에 가톨릭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었습니다. 제가 검색을 해보니 그렇습니다. ‘네 번째 잔의 비밀’입니다. 나중에 한번 보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개종을 했어도 성체성사에 대해 거부감이 처음부터 전혀 없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이유 때문에는 보고는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 신부님께서는 그런 측면도 고려해서 추천하시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통화가 끝난 후에 책도 다시 캡쳐해서 보내주셔서 제가 검색을 해봤습니다. 서평을 몇 개 검색하면서 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성체성사에 대한 의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미사의 은총을 알긴 알아도 그게 어떻게 해서 은총이 되는지는 사실 평신도로서는 잘 알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부적인 내용을 좀 더 잘 알게 되면 미사의 가치가 좀 더 새롭게 와 닿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과 어제 있었던 그 일이 복합적으로 뭔가 저에게 어떤 것을 묵상하게 해 주었습니다.좀 더 부연하자면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신앙이 게을러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가치를 진정으로 알게 된다면 자신의 현재 신앙생활이 탑에 돌을 하나하나씩 쌓아올려가는 탑과 같다면 게을리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겠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주일만 지키는 신자로 된 이유는 잘 모릅니다. 신앙심이 식어서 그럴 수도 있고요 또 다른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도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는 별론으로 하고 전자인 경우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우리가 만약 하느님 나라에 가게 되면 이를 갈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은 후회를 할 여지는 많을 수 있습니다. 평소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런 후회를 할 확률은 현저히 떨어지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구체적인 사례를 이 자리에서 언급하긴 힘들지만 에둘러 한번 표현해보겠습니다. 신앙심이 식어서라는 표현을 말입니다. 사실 이런 경우는 식어서 식은 게 아니고 다른 이유로 인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사례를 지금까지 봤을 땐 그렇습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이 과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욕심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입니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짧은 기간의 경험이지만 분명한 것은 설령 그 욕심을 나중에 채웠다고 해도 그게 자신의 삶에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한순간 행복한 것밖에 없는 '만족감'에 불과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보면은 말입니다. 아마 모르긴 모르지만 본인 스스로도 그때는 몰랐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른 후에는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따라가는 신앙이 만약 이와 같다면 먼 훗날 하느님 나라에서 많은 후회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때 그런 후회를 하는 오점을 남길 수 있는 삶을 이 세상에서 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굳이 제가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도 열심히 살아야 하겠지만 우리는 이 세상이 다가 아니고 또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영원한 삶을 사는 곳에 가기 위해 잠시 스쳐지나가는 곳으로 알고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사는 천국을 좀 더 사모해야 이 세상에서 좀 더 유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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