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0 주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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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8-19 | 조회수903 | 추천수7 | 반대(0) |
글을 읽을 때 중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단어는 글의 기본입니다. 단어가 문장이 되면 글을 쓰는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문장이 모여 문단이 되면 글의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위로를 주는 글, 용기를 주는 글, 비판과 비난의 글이 됩니다. 문단과 문단의 맥락을 이해하면 글의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은 대부분 신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일의 날씨는 예측하면서 어째서 시대의 징표는 모르느냐?” 단어와 문장에만 머물면 글의 목적과 가치를 알기 어렵습니다. 글의 맥락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주체적으로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은 취하고, 버려야 할 것들은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몸에 유익한 음식을 선택해서 먹지, 몸에 독이 되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인터넷과 검색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시대의 징표를 정확하게 이해해서 받아들일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토마시 할리크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오후’에서 시대의 징표를 이렇게 진단합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의 치유력을 새로 일깨우고, 내부적으로 분열된 절름발이 교회를 야전병원으로 만들고 민중의 빛이 되게 할 수 있을까? 교회와 종교를 게토, 폐쇄되고 요새화된 벙커, 철 지난 과거 신조들로 장식된 무덤, 진정제나 수면제를 소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개인 정원으로 만들려는 유혹에 어떻게 맞설 수 있을까?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신뢰를 잃고, 자유 좌파들에 의해 단호히 배격당하고 외면된 그리스도교가 다양한 목소리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상호 존중과 소통, 가치 공유의 도덕적 풍토로 바꿀 수 있는 정치 문화를 형성하도록 이끌 수 있을까? 어떤 유형의 신앙이 다가올 시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의 오후라고 지칭한 시대에 사람들을 위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교회, 신학, 영성이 어떤 형태의 변화를 격어 나가야 하는지 대답하고 싶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토마시 할리크가 진단한 시대의 징표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이탈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소의 감소로 성직자들의 고령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사제가 없는 성당은 폐쇄되거나 이웃본당과 통합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에게 교회의 문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블랙홀이 되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마저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인간이 쌓고 있는 탐욕과 욕망의 바벨탑은 아름다운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를 넘어 지구열대화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폭염, 가뭄, 화재는 삼종세트가 되어서 우리의 삶에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 내보내는 ‘온실가스’는 지구열대화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아름다운 지구를 훼손하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땅, 물, 공기가 오염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땅, 물, 공기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생명의 죽음을 초래합니다. 우리의 삶은 때로 평등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실패를 거듭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모욕과 수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새로운 권위를 지니셨고, 기존의 질서와 틀을 허물었던 예수님은 늘 당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일까요? 그렇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믿으셨고, 예수님께 포도주를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아니었지만 자신을 믿고 부탁한 성모님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행한 첫 번째 표징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백인대장이었습니다. 백인대장이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저도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면 부하들이 저의 말을 듣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하인이 곧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도 그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오늘 우리가 만나는 가나안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청합니다. ‘강아지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말을 듣고 또 감동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믿음은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시작이고 출발입니다. 그 믿음은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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