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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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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23 조회수307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마태 20,1-16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세상살이가 팍팍해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은 마음이 매우 보수적으로 변해서, 힘 없고 가난한 이들도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복지 국가’에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세상이 ‘공정’하기만을, 내가 열심히 갈고 닦은 능력에서 만큼은 차별받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그 단적인 예로 몇 년 전 인천 국제공항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했을 때,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정부의 처사를 두고 공정에 어긋난다며 반대했지요. 복지와 후생이 좋은 그런 좋은 일자리는 시험을 봐서 ‘능력’있는 사람이 들어가야 하는 것인데, 정규직원을 그런 식으로 뽑으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해가며 준비하는 이들을 역으로 차별하는 ‘불공정’이라는 겁니다.

 

참으로 서글프지만 그게 요즘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많이 일한 사람은 많이 받고 적게 일한 사람은 적게 받아야 합니다. 능력이 부족하고 몸이 약한 사람들은 홀대를 받거나 무시를 당해도 어쩔 수 없지만,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런 양적이고 물질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서는 안됩니다. 똑같은 시간을 일했는데도 누구는 ‘정규직’이라서 돈을 많이 받고 누구는 ‘비정규직’이라서 돈을 덜 받는 것이 우리가 진정 바로잡아야 할 ‘불공정’입니다. 똑같이 소중한 한 사람인데도 누구는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일하고, 누구는 열악한 환경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 우리가 진정 퇴치해야 할 ‘불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 할 참된 공정과 자비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첫째 포도밭 주인은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일꾼을 불러들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서 하루 일과가 거의 끝나가는 늦은 오후 무렵까지,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직접 장터로 나아가 일할 사람을 데려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능력이나 실적은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몸도 약하고 능력도 없어서 일꾼으로 뽑혀가지 못하는 소외된 이들까지 다 불러들입니다. 그가 일꾼들을 부르는 목적은 그저 일을 시키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일을 통해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해, 또한 일을 통해 삶을 영위해 나갈 길을 마련해주기 위해, 즉 그들을 살리기 위해 불러들이는 겁니다. 그러니 그 ‘부르심’ 자체가 이미 ‘은총’이지요.

 

둘째, 일을 마치고 품삯을 줄 때 제일 나중에 불려온 이들부터 줍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오래 일한 이들부터 먼저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굳이 순서를 바꾸어 제일 적게 일한 이들부터 챙겨주는 것은 그들에 대한 깊은 배려의 차원입니다. 사실 그들은 능력과 조건으로 따지면 그 자리에 오지 못했을 이들이지요. 그래서 일을 하더라도 보수를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주눅들 수 밖에 없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자신의 자비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그 작고 약한 이들을 먼저 챙깁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베푸시는 하느님의 마음 씀씀이를 보여줍니다.

 

셋째, 모두에게 똑같은 품삯이 주어집니다. 그것은 먼저 부르심을 받아 오래 일한 이들을 부당하게 대우하는게 아닙니다. 그들이 받을 품삯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중에 부르심을 받아 적게 일을 한 이들에게는 자비가 베풀어졌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저 ‘원칙’과 ‘공정’만을 따지지 않고 ‘자비’를 더해주는 그 너그러움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포도밭 주인이 약속한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들이 받던 하루치 일당입니다. 그런데 그 금액을 산정하는 기준은 얼마나 일을 잘, 많이 했는가가 아닙니다. 4인 가족이 모자람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얼만큼의 돈이 필요한지를 사회적으로 논의하여 산정한 금액이지요. 그러니 ‘한 데나리온’이면 충분합니다. 왜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받지 못하느냐고 불평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욕심내는 만큼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큼 모자라지 않게 채워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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