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강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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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8-24 | 조회수35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강론] 요한 1,45-51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국어사전에서는 '고정관념'을 '마음 속에 굳어있어 변하지 않는 생각'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내 생각이 '틀릴'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자신의 마음 속에 고정된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다보니 그와 '다른' 사실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정관념은 그것을 갖고 있는 주체 뿐만 아니라 그 고정관념의 '대상'이 되는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즉 한 사람이 그를 바라보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사실과 다른 왜곡된 모습으로 잘못 판단되는 겁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타나엘도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을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할 메시아는 특정 지역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이 아닌, 별 볼 일 없는 ‘나자렛 시골마을’ 출신인 예수님이 메시아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하지만 다행히도 나타나엘의 마음 속에는 ‘고정관념’은 있었지만 ‘완고함’은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와서 예수님을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필립보의 제안에 기꺼이 그를 따라 나섭니다. 그런데 그가 당신께 오는 모습을 멀리서부터 지켜보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그 말씀을 들은 나타나엘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자신은 예수님이라는 분을 그날 처음 만났는데, 대체 어떤 근거로 자신을 ‘진실된 사람’이라고 판단하셨는지가 궁금해진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이 말씀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다’라는 표현은 당시의 라삐들이 무화과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던 모습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나타나엘도 필립보를 만나기 전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에서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타나엘의 모습을 보시며 그가 열심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며 따르고자 하는 진실된 사람임을 알아보시고 인정해주신 것이지요.
둘째, ‘내가 보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과거의 어느 시점에 그를 보셨다는 ‘인지’의 측면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미 오래 전부터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를 주목하고 계셨다는 ‘의지’의 측면을 나타냅니다. 즉 예수님은 그를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지요. ‘바라봄’은 곧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이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나타나엘을 사랑과 관심으로 바라보시며 그를 당신 마음에 담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두가지 사실을 깨달은 나타나엘은 마음에서부터 우러나는 감사와 기쁨에 겨워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이스라엘의 임금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다른 이들처럼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을 보고, 그분께서 보여주시는 능력에 혹해서 그렇게 판단한게 아닙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봐주시고 인정해주시는 그분이야말로, 따뜻한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봐주시고 챙겨주시는 그분이야말로 온 세상을 다스리실 참된 임금이시며, 자신은 그분을 자기 삶을 주관할 ‘주님’으로 섬기고 따르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해득실을 따지는 ‘필요의 눈’으로는 그분의 참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의지와 순명으로 따라가는 ‘믿음의 눈’으로 봐야 그분의 진면목을, 그분 사랑의 섭리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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