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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0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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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25 조회수742 추천수4 반대(0)

미국에서 5년간 교포사목을 마치고 한국을 귀국하는 신부님의 송별회식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함께 보냈기에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함께 캠핑가고, 자전거 타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이렇게 한분 한분 귀국하는 신부님들을 보내고 보니 이제 저의 차례도 멀지 않았습니다. 송별의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입니다. 며칠 전에 술에 관련된 단어를 읽었습니다. ‘수작(酬酌)과 짐작(斟酌)’입니다. 한국의 음주문화에서는 상대방에게 술잔을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권하고, 손님이 술을 마신 후에 술을 권하는 것을 수작(酬酌)이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수작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흑심을 품고 상대방에게 접근하는 것을 수작 부린다고 합니다. 더 부정적인 말로 표현할 때는 그 앞에 라는 단어가 붙기도 합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것저것 질문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 수작부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제가 성무에는 관심이 없고 취미활동에만 전념하면 이 또한 수작부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의 물을 말씀하시는 것은 진정어린 수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술잔이 투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술잔이 비었는지 살펴보고 따라주는 것을 짐작(斟酌)’이라고 합니다. 저도 술자리에서는 짐작을 잘 하는 편입니다. 상대방의 술잔이 비워지면 바로 채워주곤 합니다. 성격이 급한 것도 제가 짐작을 잘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짐작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고 관심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짐작의 달인이십니다.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도 미리 방을 예약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식사를 못했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축성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셨습니다. 오천 명이 먹고도 12광주리나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짐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빵을 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포도주를 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짐작못한 적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데 제자들은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을 예고하시는데 제자들은 영광의 날이 오면 높은 자리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짐작도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배반하였고, 짐작도 못한 대사제와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였습니다. 저 자신 술자리에서 짐작은 잘하지만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에는 짐작도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룻과 보아즈는 따뜻한 마음으로 수작하였고, 배려와 관심으로 짐작하였습니다. 룻은 홀로된 시어머니를 정성껏 모셨습니다. 보아즈는 그런 룻이 밭에서 곡식을 얻을 수 있도록 짐작하였습니다. 수작과 짐작이 만나서 룻과 보아즈는 결혼하였고, 이 가정을 통해서 다윗이 태어났고, 다윗의 가문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수작을 하지 못하고 수작을 부리는 바리사이를 비판하셨습니다. 짐작하지 못하고 허세를 부리는 바리사이를 비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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